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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점찍고 돌아온 나의 병




- 수술을 하신 거라고요? 작년 말에요?


 한국에 돌아와 자가 격리까지 마친 여름의 끝자락, 건강 검진에서 만난 산부인과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몇 번이고 되물었다. 거의 반 년 만의 초음파. 하노이에서의 자의 반 타의 반의 긴 요양 생활이 내 깨끗한 자궁을 유지해 주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선생님의 의아하다는 듯한 말투는 불안을 부추겼다.


- 뭐가 있나요? 보이는 게?

- 네. 일단 자궁에는 근종이 여러 개 보이는데 큰 사이즈는 아니고요. 왼쪽 난소에 물혹으로 의심되는 게 있는데 이게 좀 사이즈가 크네요? 6센티 정도? 수술 후에 간혹 이런 게 생기기도 하는데 좀 지켜보셔야 할 것 같아요. 사라질 수도 있는데 또 아닐 수도 있으니까...


 물혹 정도야. 그야말로 있다가도 없어지고, 안 없어지면 피임약으로도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대수냐 싶었다. 그 외의 건강 검진 결과는 놀랄 정도로 모든 게 정상 범주였다. 기나긴 요양 생활이 빛을 보는 게 확실했다. 


 다음 스텝은 시험관 시술이었다. 통증에 시달리고 수술과 회복을 하느라 저만치 뒤로 미뤄졌던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낳느냐 마느냐 고민을 할 시기는 이미 지나버렸다. 이제 나의 나이는 긴 고민을 했던 게 조금 후회스러워질만큼 턱 끝까지 차올랐다. 


 몇 년 전 인공수정 시도를 했던 난임 전문병원을 다시 찾았다. 선생님에게 그간의 일들을 설명하는 데만도 꽤 오래 걸렸다.


- 지금 상태를 그럼 한 번 볼까요?


 건강 검진에서 발견된 왼쪽 난소 물혹에 대해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누웠다.


- 건강 검진 때 물혹이 몇 센티라고 하셨죠?

- 6센티 정도요.

- 지금 사이즈가 7센티가 넘는데 그럼 이게 좀 커진 거네요?


 한 달 사이 1센티가 넘게 커진 것이다. 도대체 난소 사이즈가 얼만한데 그렇게 큰 물혹이 자랄 수 있다는 건지. 이게 있는 상태로는 시험관 진행이 어려우니 일단 사이즈가 줄어드는지 보자며 2주 동안 먹을 피임약을 처방해 주셨다. 


 괜스레 왼쪽 아랫배가 부푼 느낌이었다. 뱃살이 없이 마른 편이긴 한데도 확실히 나이가 드니 아랫배는 조금 나오는구나 생각했던 게 어쩌면 물혹인가 싶기까지 했다. 소변볼 때 아랫배를 주먹으로 꾹 누르는 습관이 있는데 그러다가 터지지는 않을지, 너무 세게 복근 운동을 하면 자극받아 터지지 않을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몸 안에 정체모를 7센티의 시한폭탄이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2주 뒤 초음파에서 물혹은 8센티가 되었다. 사이즈가 줄기는커녕 더 커졌다. 


- 이게 단순 물혹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양성 난소 종양일수도 있는데, 이대로 두고 시험관 진행은 어려워요. 수술 받은 곳에서 다시 한 번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겠는데요.


 왠지 미안해하는 표정의 선생님을 뒤로하고 나왔다. 수술한 병원의 정기 검진은 다음 달이었다. 그 날을 기다리는 동안 틈이 날 때마다 회한에 잠겨 지나간 시간들을 되짚어 봤다. 로렐린 데포 주사를 6차까지 맞아야 하는데 5차에서 멈춘 게 원인이었을까. 하노이에 있는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캔 맥주 하나를 마셨는데 그게 원인일까. 아니면 애초에 수술이 완벽하지 않았던 걸까. 



- 재발했다고 봐야겠네. 아유, 좀 이른데...


 나를 수술한 선생님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수술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내 자궁이 다시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세한 상태는 또다시 MRI와 CT를 찍어봐야 하지만 이번에도 수술은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원래도 자궁 질환이 재발률이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얘기라고는 생각 안했다. 나에게 벌어질 일일 줄 알았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기록을 해두었을 것이다. 수술에 이르기까지의 세세한 과정을 말끔히 머릿속에서 비워내고 있었는데 하나 둘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게 끔찍했다. MRI촬영이 어땠더라? 관장은 어땠더라? 회복할 때 배가 어떻게 아팠더라?


 혹이 시시각각 자꾸만 커지는지라 내년에나 잡을 수 있었던 수술 날짜가 올해 안으로 앞당겨졌다. 원망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수술은 잘 됐었고, 내 생활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불현듯 장마처럼 재발이 찾아왔다. 






 신혼 초 언젠가 제주도에서 일하던 남편 친구가 농장에서 직접 딴 귤을 한 박스 꽉꽉 채워 집으로 부쳐준 적이 있었다. 베란다도 없는 작은 집에 살던 때라 귤을 보관할만한 서늘한 곳이 없어 현관 한 켠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집어 먹었다. 아무리 부지런히 먹어도 둘이 먹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귤 사이로 보이는 바닥 쪽 귤 몇 개가 무르고 곰팡이가 핀 게 보였다. 상자를 비워 상한 귤들을 골라내고 다른 상자에 귤을 띄엄띄엄 담아서 다시 두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곰팡이가 생긴 귤이 끝없이 발견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 균이 같은 박스 속 귤들에 닿아 있다가 나중에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내 자궁은 곰팡이 핀 귤을 담았던 상자와도 같아서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수술도 마지막이 아닐지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몸속 이곳저곳이 더럽혀지고 있는 느낌에 내 마음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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