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찹쌀부꾸미 Apr 07. 2021

신인류의 발견




 두 번째 수술도 어김없이 잘 되었다. 잘 되었다는 말은 절대로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과 같지 않다는 걸 이제 알고 있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긴 했으나 응급 상황으로 다른 과의 협진이 필요했거나 긴급 수혈이 필요한 건 아니었고, 목표로 한 부분을 해결했으니 잘 되었다는 것일 테다. 


 왼쪽 난소의 거대한 혹은 눌러 붙어 있었고 나팔관에서도 큰 물혹이 발견됐다. 유착이 심해 난소와 나팔관 둘 다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모니터에 띄워놓은 난소의 혹은 줄곧 상상해온 물풍선 같은 모양이 아니었다. 밟혀 늘어진 껌처럼 여기저기에 찐득한 모양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오른쪽 난소에도 작지 않은 크기의 물혹이 보이지만 그것마저 건드리면 아기를 가질 확률이 훅 줄어들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그러니 한 달 정도 회복하고 한시바삐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라고. 임신은 숭고한 것이기 이전에 내 건강 스케줄의 맥락에 있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수술인지라 모처럼 2인실을 신청했는데 옆 침대의 수술을 마친 환자분이 TV를 너무 크게 틀어놓아 그냥 6인실로 갈걸 괜한 사치를 부려 봉변을 당하나 생각했다. 어쩜 그리 내가 싫어하는 프로그램만 골라 트는지 같은 반 학생이었다면 친해질 일도 없었겠다 싶었다. 굳게 닫아 둔 커튼 안에서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재수술을 앞둔 내 팔자를 곱씹으며 한숨만 내쉬었다. 


 - 혹시 TV소리 너무 크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아들 둘 키워서 소음이 무딘 편이라...


 의외로 그녀는 다음 날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오며 내 상태에 대해 물었고, 자기는 4번 수술 하고 애가 둘이라 이제 쓸모도 없으면서 말썽만 부리는 자궁을 적출했다고 했다. 긴 머리를 묶고 있던 탓에 나를 꽤나 어리게 보았는지, 어린 나이에 벌써 두 번이나 수술해서 어쩌냐며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었다. 일방적으로 알게 된 그녀의 나이는 나와 6살 차이일 뿐이었으나 굳이 내 나이를 공개하진 않았다. 


 그녀는 포털 사이트에 이런 쪽으로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거기 가입하면 도움이 많이 될 거라며 친절히 주소까지 알려주었다. 덕분에 나는 그날 밤 수술 준비를 하며 모로 누워, 두 번의 수술 정도로 멘탈이 무너질 일은 아니구나 깨달을 만큼 다양하고 어마어마한 환자들의 사례들을 접했다. 자궁내막증이 끊임없이 재발해 7번을 수술한 사람, 20대 중반에 자궁을 적출한 사람, 수술이 잘못되어 방광에 문제가 생긴 사람. 내 주변에선 만날 수 없었던 나와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한데 모이니, 온 세상이 자궁내막증으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로 보호자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에 남편은 입원하는 날에도 병실 밖에서 내게 짐을 건네주고 손을 흔들었고, 수술 당일에도 병실에 들어오지 못한 채 수술을 마친 나를 복도에서 살펴보고 들여보내야 했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일인지 수술 후 냉동 창고에 갇혀 있었던 것처럼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렇게 며칠 내내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빈혈도 심해 퇴원이 한참 연기되었다. 코로나로 응급 상황에 바로 재입원을 하기가 까다로운 상황이라 되도록 퇴원을 미루며 최대한 온전한 몸 상태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마침 수술 다음 날 생리까지 시작되어 몸은 만신창이였다.


 지난번처럼 일주일이면 될 줄 알았던 병원 생활이 길어지자 나는 일상의 무료함과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과 제대로 씻지 못하는 괴로움과 코로나에 대한 분노로, 작은 침대위의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든 글로 쓰고야 말리라. 사실 이 글은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의 끝에서 출발했다. 역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긍정적인 것에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상, 나와 같은 일을 경험한 다른 사람의 느낌도 궁금했다. 게다가 디테일한 기억에 약한 내가 저 멀리 뒷전이 된 일들까지 끄집어내려면 비슷한 사례를 찾아봐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신인류라 칭하고 싶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이름하야 블로거들이다. 그들은 병을 진단받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한 컷 한 컷 사진과 함께 낱낱이 전달한다. 


- ㅇㅇ병원 ㅁㅁㅁ선생님께 수술 받았어요. 입원하면 입는 환자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항생제 주사 테스트에서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 그것도 세 번 진행됐네요. 관장은 8시에 한 번 9시에 한 번, 총 두 번이었어요...


 정말이지 그들의 사진과 글을 보면 르포르타주가 따로 없다. 내 기준엔 종군 기자 못지 않다. 몸이 아픈데도 그렇게 상세하게 시시각각 사진을 찍고 나중에 그걸 정리해서 글로 쓸 수 있다는 건 보통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신인류다. 세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병원명 + 의사명’의 조합으로 검색하면 병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당장 입원준비 가방을 능숙하게 쌀 수 있을 정도다. 


 마음이 병증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데에도 몸과 정신의 합을 맞추느라 절름거리던 나에게, 태연하고 담담한 태도로 이모티콘을 섞어가며 상황을 공유하는 그들은 정말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류였다. 재미있는 건 수술 후 커튼 속 환자용 침대에 갇혀있는 동안 뒤늦게 찾아 본 그들의 수술 후기 블로그 글이 꽤나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공개하는 경험담은 왠지 내 상황을 조금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치 유체이탈과도 같다.


 당장은 고열과 빈혈에 시달려서 걷기도 힘들 지경이지만, 같은 상황에 있던 누군가 중에는 바늘에 연결된 수액 줄이 빠지며 역류한 피로 침대 밑이 피바다가 된 사람도 있었고, 유착된 장기를 떼어내다 방광에 문제가 생겨 또 다른 수술을 앞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실들이 내 상황도 하나의 케이스에 불과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생기면서부터 병원에서 버티는 것이 조금 수월해졌다. 


 사실 이번뿐만이 아니라 해외를 여행할 때에도 몇 번 블로거들에게 감탄한 적이 있긴 했다. 부지런하고 세세한 그들 덕에 두리번거리거나 현지인에게 묻지 않고도 공항버스 타는 위치를 한 번에 찾아냈고, 택시의 바가지 요금 기준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직접 마주친 적 없는 이 신인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다. 본인의 기록 강박에서 기인했는지,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박애 정신에서 기인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건 틀림없다. 병의 진단과 치료 과정의 상세한 부분을 기대하며 이 글을 읽게 된 분들이 있다면 죄송한 마음과 함께 조심스럽게 블로그 검색, 카페 가입을 권해드린다. 자발적으로 활약하고 계신 수많은 종군 기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옆 침대 46살의 그녀는 구부러지는 빨대, 화장실용 물티슈, 깨끗한 비닐 봉투, 음료수 등등을 내 옆에 놓인 테이블 위에 잔뜩 물려주고 퇴원했다. TV소리 때문에 마음속으로 짜증냈던 것이 미안했다. 우리는 연락처를 나누지도 않았고 다시 만날 일도 없었지만 마치 오래 알아온 사이처럼 서로의 건강을 응원하며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동병상련은 언제든 사람을 신인류로 만든다. 나또한 이 글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신인류가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이전 18화 점찍고 돌아온 나의 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