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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Mar 17. 2022

어둠을 마주하기

고통을 외면하기보다 마주하기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나는 늘 잠 속으로 도망쳤다- 슬플 때에도 화가 날 때에도 내 감정을 어쩌지 못할 때에도, 어김없이 깊은 잠을 잤다. 긴긴 잠을 자고 나면 물에 물감을 섞은 듯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고통이 옅어졌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뭐 그리 마음이 힘들었겠느냐마는 작은 몸만큼이나 자라지 못한 마음은 소소한 나부낌에도 넘어지기 일쑤였다. 가장 친한 친구들을 두고 전학을 가게 되는 일도 있었고,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성적을 받았을 때에도 그랬고, 내 손바닥을 간지럽히며 놀던 거북이가 죽었을 때에도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라앉기만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친구와의 구질구질한 이별 뒤에, 짝사랑하던 사람의 냉정한 등을 본 날, 다정한 줄로만 알았던 남자의 양다리 배신을 알게 된 후 나는 며칠이고 침대를 빠져나오지 않았다. 끼니도 거른 채 잠을 잤다. 그러고 보면 이십 대 시절 힘든 날의 대부분은 고작 남자 때문이었다니, 과거의 나는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전설적 진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꽤나 어리석고 열정적인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부끄럽다. 어쨌든 과하다 싶은 잠을 자고나면 조금은 나아졌다. 나를 괴롭히던 사건들이 먼먼 과거의 일처럼 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스스로 마음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 간단하면서도 미련한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깊은 어둠에 잠겨버린 때가 있었다. 내가 저지른 선택들이 실망스러워 도저히 살아갈 힘도 현실을 마주할 용기도 남지 않았었다. 애정을 가지고 객관적 눈으로 나 자신을 다독일 겨를이 없어 병원에 가볼 생각도 못했다. 갔더라면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려나. 그때의 나는 익숙해진 버릇대로 잠 속으로 빠지곤 했다. 문제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분명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밥 때를 한참 지나 짜증이 난 강아지가 팔을 미친 듯이 긁어대 눈을 떠보면 7시간이 지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모르는 사이 기절하듯 잠드는 일이 잦아졌다. 


 그동안 이런저런 꿈들을 꾸었다. 희한하게 꿈속에서조차 내 선택들은 바로잡아지지 않았다. 그저 건물이 빼곡한 작은 골목을 끝없이 걷거나 오며가며 발목을 간지럽히는 느린 파도 속에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무의식이 이끈 꿈이라면 적어도 내가 올바른 선택들을 했을 때에 펼쳐질 행복한 드라마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울지도 못하고 추상적 공간을 가만히 맴돌며 현실이 내게서 떠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매번 통하는 방법이었는데 이번에는 좀처럼 먹혀 들질 않았다.


 몇 달의 시간을 흘려보낸 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 위태롭지만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과거의 모든 것을 놓아주는 선택. 별로 길지도 않았던 인생 중의 한 뭉텅이를 없었던 것처럼 들어내더라도 과감히 리셋 버튼을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회복 또한 쉽지 않았다. 종종 걸음으로도 성큼 걸음으로도 인생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나는 재미있는 일에 웃을 수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병에 걸린 듯 잠 들던 그때를 떠올리며, 내가 모르는 사이 그래도 내 몸뚱이가 정신을 살려두려고 본능처럼 습관에 의지해 움직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실없는 웃음이 났다. 역시 난 굳이 따지자면 생에 집착이 있는 편이니까.


 나는 잠이 드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잠드는 과정을 세세하게 관찰하는 취미가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이렇다. 사건이든 인물이든 감정이든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무언가가 영상처럼 떠오른다. 진득하게 생각처럼 떠오른다기보다 파편처럼 한 번에 몇 가지가 눈앞에 정신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식이다. 한참 사념 속을 헤매다 별안간 자각한다. 아- 이렇게 정신 사나우면 앞으로 한참은 잠 못 든다, 집중해서 자자. 호흡도 가다듬고 미간에 집중해 본다. 그 다음부턴 색이 괴롭힌다. 감은 눈꺼풀 위로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온갖 색이 다가왔다 멀어진다. 조금만 집중을 놓치면 그 색은 형상을 만들어내 금세 누군가의 얼굴로, 과거의 일들로 변해 버려 전 단계로 돌아간다. 그래서 색들을 집중해서 찬찬히 바라보며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낸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로 들어설 수 있다. 바로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어떤 생각도 판단도 멀리하고 어둠만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세상 모든 것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으로 멀어지고 고요 속에서 가장 깊은 어둠과 마주하는 순간. 그 순간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마음이 힘들다고 해서 잠으로 도망치지 않는다. 조금 혹독한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진짜 변화를 가져오는 건 어둠을 직시하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그 어둠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맑은 눈으로 마주하고 헤아려보기 전까지는 아무 소용없다. 어둠을 바라보고,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어야 변화는 일어난다. 결국 필요한 건 담대한 마음뿐이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아주 미약한 빛이라도 찾아낼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어둠을 지나고 나야 우리는 꿈꿀 수 있다. 내가 알게 된 이 평범한 사실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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