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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May 21. 2022

왜 차렷 자세로 자는 거야

실수가 두려워 지레 긴장하지 않기



 아마 나는 관짝 안에 이불을 깔아줘도 큰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잘지도 모른다. 뚜껑을 덮는다면 얘기가 좀 다르겠지만, 아무튼 놀랄 만큼 바로 누운 차렷 자세로 아침까지 별 뒤척임 없이 잔다. 몸 너비 정도의 공간만 확보되면 자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 자세로 자는 것 자체는 뭐 큰 문제는 아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긴 있다. 일단 머리를 베개에 완벽하게 힘을 빼고 내려둔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헤어샵에서 머리를 감겨줄 때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가서 꼭 한 번 ‘힘 빼세요’ 소리를 듣고 마는 그 느낌. 어깨는 바짝 올라가 있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가드 올린다고 하던가. 자고 있는 나를 누가 한 대 치려고 위협하는 것도 아닌데 꼭 잔뜩 쫀 것 마냥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인상은 왜 그리 쓰고 자는지. 이건 같이 자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평생 몰랐을 일이다. 그러니 종합적으로 보면 나는, 언제 전투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간신히 몸 누일 좁은 구석을 발견해 쪽잠을 자는 사람처럼 잔다.


 그 와중에 정말로 가드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몇 번 발생한 적도 있다. 옆에서 자는 남편은 나와는 달리 자면서도 자유분방하게 신체를 쓰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피곤한 날에는 팔을 허공에 내질렀다 떨구는 발작을 하기도 하고, 운동을 많이 한 날에는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고 자는데 그 팔을 내리는 과정에 내 얼굴에 정교한 엘보우 가격을 시도하기도 한다. 내가 매번 선잠을 자고 있던 터라 불굴의 순발력으로 피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안대를 쓴 해적 꼴이 날 뻔 했다.


 결혼할 때 주변에서 퀸 사이즈의 침대는 분명히 작을 거다, 무조건 침대는 클수록 좋다 라고 했던 말을 새겨 들었어야 했는데. 잠잘 때의 내 움직임 반경만 고려해서 퀸 사이즈를 샀더니 나머지 공간을 남편이 그렇게 활개 치며 괘씸한 자유를 누릴 줄은 몰랐다. 우리의 공동 목표는 더 큰 침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각자 싱글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자는 것이 되었다. 


 어쨌거나 지금 상태로는 내 쪽의 억울함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 속 부부는 살이 맞닿은 채로도 잘만 자고, 서로의 몸에 다리가 걸쳐진 채로 뒤엉켜서 잘만 자던데. 나로서는 전혀 불가능. 그러면 혼자 요란하게 뒤척이기라도 해서 무방비인 남편의 어딘가를 가격해보고도 싶지만 그것도 아예 꿈같은 얘기. 태생이 긴장 상태인 사람에게는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듯한 자세로 자는 것 자체가 도전인 것이다.



 매사에 긴장도가 높은 것이 완전히 단점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일할 때의 나는 너그럽거나 유연하지는 않아도, 일말의 차질도 빚지 않는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살면서 만난 많은 이들이 그 점을 아주 높이 평가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가질 수 있었다. 한 때는 내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수식어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보니 그 말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ㅇㅇ한테 맡기면 걱정이 없다니까. ㅇㅇ 믿고 하는 거예요. 제 때에 한 삽 씩 퍼 넣어 주는 석탄처럼 나를 달리게 했던 말들은 돌연 촘촘한 철창이 되었고, 언젠가 부터는 작은 실수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실수는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그 무자비함이 자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불쌍한 인간을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긴장감은 평생 매 순간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곳에 적절히 쓰여야 하는데, 이미 선을 훌쩍 넘은 내가 할 다음 일은 당연하게도 균형을 찾는 일이겠다. 차고 넘치는 긴장감을 어느 정도 떨쳐내는 것. 가끔은 실수하더라도 뭐 어때, 수습하면 되지. 다 잘할 수 있나, 못 하는 것까지 일일이 잘해내려고 용쓸 필요 없지. 못한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그런 너그러움을 되찾는 일이다.


 게으르게 한 번씩 요가 수업을 들으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선생님의 몸을 본다. 나보다 훨씬 더 뒤로 넘어가는 부드러운 어깨, 상체를 떨군 자세에서 묵직하게 가까워지는 정강이와 이마,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게 늘어나는 옆구리,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 가슴.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순 없지만 나 나름의 사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선생님 눈에는 들어오리라 믿는다. 그 오랜 시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쌓아올린 긴장을 다시 하나하나 내려놓는다는 게 영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오늘은 나만 아는 정도로 약간 더 어깨에 힘을 뺐고, 뒷목을 부드럽게 만들려 애썼고, 가슴을 좀 더 들어 올리는 등의 소소한 성취가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매일 어린 시절 장래 희망처럼 그려 본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몸과, 자면서 나도 모르게 남편의 콧잔등을 후려갈기는 행복한 내 모습. 이보다 더 달콤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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