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시장 길을 걸으며 아이들에게 닭곰탕 집에 갈까 하고 물었다. 아이들이 싫다고 한다. 아빠와 갔던 곳. 아빠가 없어서 가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더 가자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길을 걸었다.
"엄마, 저기서 아빠가 도넛을 먹었는데"
"엄마, 저기서 아빠가 호떡을 사 먹고 싶어 했는데"
아이들이 저마다 남대문 시장 길에 있는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더 나중에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슬픔이 좀 무뎌질 때, 닭곰탕 한 그릇으로 아빠를 추억하고 싶어 지면 아이들 손을 잡고 닭곰탕 집에 다시 가보고 싶다. 글씨가 다 벗겨지고 있는 미원 냅킨 상자가 놓여있는 그 노포에.
걷고 걸어 명동길로 접어들었다. 아이들과 나는 명동성당 길을 올라 조용히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혼인성사가 진행되고 있다. 남편은 하늘로 가기 며칠 전 호스피스 병동에서 대세를 받았다. 날마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컨디션이 좋았다. 나는 남편의 세례명을 요셉으로 해주십사 청했다. 날마다 가정을 위한 기도문과 부부를 위한 기도문을 읽었는데 요셉이라고 남편 세례명을 지으면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로 시작하는 구절 때문에 남편이 가깝게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았다. 혼인을 하는 저 부부. 서로 많이 많이 사랑하시기를. '이제 저희가 혼인 서약을 되새기며 청하오니 저희 부부가 그 서약을 따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 살 때나 못 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게 하소서' 나는 남편이 내게 미안해할 때마다 부부를 위한 기도문의 구절을 말해주곤 했다.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고 많았으나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그 사실이 축복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서울을 가게 되면 나는 또 남대문 길을 걸을 것이다. 그 길 여기저기에서 남편을 떠올리며 웃고 울 것이다. 어느 날 그 노포로 들어가 먹지도 못하는 뜨끈한 닭곰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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