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초밥 오마카세 정도는 뭐

맛있는 음식으로 서로를 위로했던, 귀여웠던 우리의 20대

by 김뚜라미

하루 한편이라는 강제성을 갖고 글을 쓰다 보니 자꾸만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무슨 일이 있었지, 누굴 만났었지 짚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20년은 거뜬히 넘기는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많이 붙잡진 못했지만 시기별로 군데군데 연이 닿아있는 지인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참 고맙다. 글 하나를 쓰다가 갑자기 블로그 방명록에 들어가 보았다. 까마득한 2006년과 2007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안부글과 반복되는 필명들, 그리고 따스한 덧글들. 방향 없이 쏘다니며 그저 어둡게 엉켜있었던 같은 스무 살의 나를 곱고 빛난다고 끊임없이 다독여준 동아리 언니 오빠들. 그리고 참 우둑하게 내 곁에서 점심 한 끼를 제안해 줬던 친구들. 특히나 내가 잠시 미국에 가있었던 07년과 08년에 앞다투어 보내주던 동아리 소식과 몸 챙기고 건강히 행복하게 지내라는 안부들.


그 당시는 싸이월드가 모든 소통의 중심이었다. 모든 약속과 안부, 매일의 일기와 사진업로드,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플러팅까지 모두 싸이월드에 남기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아날로그 인간이었던 우리는 블로그 방명록으로 비밀글을 남기고 댓글을 달며 소통했다.


몇 시간에 걸쳐 그 글들을 읽으면서 눈물샘이 가득 차오르고 비워지고 또 차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이십 대는 정말 어둡고 긴 터널 같았는데 우리 참 귀여웠구나. 그리고 서로를 향해 참 열심히 다독이고 있었구나. 찡해진 마음이 마음 가득 벅차올라 B언니에게 어제 앞뒤 없이 연락을 했다. 우리 2007년에 초밥에 미쳐있었던 거 같다고. 스시 사달라, 스시 먹고 싶다, 초밥초밥초밥 이런 글들의 연속이었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도, 또 다른 선배도 우리 내일 점심에 스시 먹을래? 우리 저번에 스시 못 먹은 거 다음 주에 먹을래? 배고픈데 스시 땡긴다.


B언니와 나의 대화는 가볍지 않았으나 저 스시사태를 얘기하다가 빵 터져 버렸다. 점심모임의 약어인 ‘점모’라는 단어도 오랜만에 발견하곤 저 단어를 참 오래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생활은 점모의 연속이었는데. 그 시절 우리만 기억하는 엄마손 칼국수, 유천냉면, 양자강, 맹구탕수육 등등. 대식가처럼 다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떠들던 이십 대의 우리가 한순간에 후루룩 되살아나면서 왜인지 모르게 미친 듯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슬픈 눈물이 아니라 뜨겁고 소중한 용액이 마음에서 흘러나와 눈을 적시곤 다시 온몸에 훅 끼쳐올라 손끝까지 따뜻해졌다. 직장에서 울고 나왔다는 B언니. 언니도 나도 짧은 대화 속에서 스물한두 살 언저리의 우리로 잠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떡진 머리로 튀김우동과 새우탕면을 먹어치우며 꾸역꾸역 기사 마감을 하던 우리의 빛나던 밤들. 칠흑이라 생각했지만 실은 백야에 가까웠던 그 시절의 맑은 우리, 그리고 날뛰던 심장과 치열했던 삶의 고민들.


예전 같으면 젊은 그 시절이 아련히 그립고 돌아가지 못해서 슬펐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치 부모가 자식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것처럼 내가 나의 이십 대를 허비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참 즐거이 보냈구나 생각하면서 다행이라는 감정이 든다. 기억보다 유치하고 별거 아닌 것에 웃고 떠들었었지 싶으면서 저 가벼운 행복들을 지금도 누리고 싶어졌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자니 계속해서 그 시절 새벽녘의 번뇌하던 우리가 떠오른다. 세상의 짐을 다 진 것처럼 진지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그 시간을 유영했다 싶다. 문화 인큐베이터라는, 우리가 매번 마감을 하던 공간이름이 한참 떠오르지 않았는데 반면 우리 동아리방 비밀번호를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너무 소름 끼치게 놀라웠다. (나 천잰가..? ) 할머니가 되어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나의 이십 대. 세련되거나 팬시함과는 거리가 먼 질척 덩어리였지만 켜켜이 행복과 웃음이 쌓여있던 다정한 연대의 시간이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


B언니가 ‘나도 이제 오마카세 한 끼 정도는 사줄 수 있는 직장인언니야!’라고 느낌표 가득의 호언을 하였지만 나에게 그녀는 여전히 동글동글 소녀감성이 넘치는 공 같은 언니다. 직장인 13년 차에 구를 대로 구른 사회인이지만 언니의 말투는 문자만으로도 여전히 소녀다. 나의 이십 대는 늘 누군가로부터의 사랑을 갈구해 왔던 거 같은데, 막상 기억을 헤집다 보니 나는 참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들쑥날쑥한 나의 끼니를 걱정해 주고, 위염을 살펴주고, 전공수업이 힘든 나를 챙겨주고, 짝사랑에 고뇌하는 나를 위로해 주고. 나는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범우주적 사랑을 억지로 짜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징징대던 나를 받아주던 무수한 사랑 속에서 나름 튼실하게 마음이 컸던 거였다. 삐죽거리고 일탈하는 순간들에도 나를 두드려준 방명록들이 비껴서 있던 나를 삶의 중심으로 데리고 와줬다.


언니와 대화를 끝맺으며 차마 말하기 힘든 기억이 또 떠올랐다. 이젠 세상에 없는 가든웍의 안부글도 있었노라고 언니에게 말하지 못했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일이지만 저 사랑을 준 사람들 중 가장 이성적이고 똑똑했던 가득웍과의 이별은 아직도 목구멍을 불타듯 아프게 한다. 언니에게 저 말을 하지 않은 건 나도 자정 가까운 시간에 더 아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마음을 초밥으로 향하게 했다. 대체 그 시절의 우리가 왜 그렇게 초밥에 집착적으로 광기를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혹은 홍콩에서 다시 만나는 날에는 꼭 초밥 오마카세를 먹어야겠다. 언니를 포함한 모든 동아리 언니오빠들 다 모아서 초밥 파티 꼭 하는 걸로. 지칠 때까지 먹고 마시고 정치 사회 얘기 하지 않고 그냥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정말 놀랍게도 푸껫 와서 제일 많이 사 먹은 음식이 초밥.

나 그렇게까지 광적인 초밥 러버 아닌 줄 알았는데 뭔가 소울푸드인가 싶은 지경.

우리 꼭 초밥 한 끼 하자 언니야. 그리고 기약 없이 툭 연락해도 지금처럼 마음이 곧장 이어지는 이 다정한 인연을 내내 이어가자.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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