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러닝과 따뜻한 커피, 내 안의 도장 깨기
바람이 쌀쌀한 새벽, 창문을 열어 아침을 맞이하며 오늘은 아침 산책을 할 날씨 군, 했다. 몸이 게을러지기 전에 서둘러 모자를 쓰고 아이를 배웅하자마자 힘차게 걸었다. 깜빡하고 이어폰을 두고 나왔지만 덕분에 청량한 아침의 기운을 눈과 귀로 흠뻑 담을 수 있었다. 흔들리는 나뭇잎의 서걱거리는 소리와 새들이 초리하게 지저귀는 소리들이 마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와 이영애가 숲 속에서 담아낸 음향 같았다. 내 앞뒤로 걷고 뛰는 사람들의 건강한 기운과 볼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느릿하게 산책하는 개들의 여유로움이 내 마음을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맑고 발랄하게 만들어줬다. 그냥 나와서 걸었을 뿐인데 마음이 이토록 개운해지다니.
돌아오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늘 비 오는 날 그냥 비를 맞아보고 싶었다. 비 맞으며 걷고 뛰다가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소박한 꿈. 아마 학교를 가야 했거나 늘 바쁜 일정들을 향하는 길이었기에 한 방울의 빗방울이라도 맞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마음 놓고 비 맞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나의 조급한 삶. 먼저 산책을 하고 돌아간 지인이 ‘비 온다 우산 있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답했다. ‘비 와서 더 좋아’
폐활량이 좋지 않아 뛰는 것보다 걷는 걸 선호한다. 여기저기 러닝이 유행이지만 꿋꿋이 빠른 걸음으로 걷기만 고수했다. 아마 끝까지 뜀박질로 완주할 수 없으면 아예 하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오늘은 비 맞는 김에 뛰어봤다. 한 발 두 발 폴짝.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가득한 미드레벨 산책로를 두려움 버리고 일단 내달렸다. 페이스 조절 따위 없어. 그랬는데 생각보다 발이 너무 잘 떨어졌다. 그동안의 잔잔 바리 운동들로 체력과 숨통이 조금은 커졌는지 오른발과 왼발이 신나게 서로를 밀어주며 멈추고 싶지 않아 졌다. 러닝 하이 따위는 느끼지 못했지만 두 발이 앞으로 세차게 나아가는 느낌이 너무 짜릿했다. 그래서 내 친구가 그렇게 새벽마다 뛰었던 거군.
동네 가까이 와서 매번 지나는 카페를 지나치다 말고 다시 돌아왔다. 굳이 집에도 있는 커피 여기서 마시기 좀 아깝다, 혹은 빨리 집에 가서 할게 이것도 저것도..라는 생각을 했었다. 매번 이 코지한 카페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동경하고 안으로 뛰어들어서 나도 따뜻해지고 싶었는데 그런 기분을 포기해 왔다. 그런데 오늘은 비를 피하자는 핑계로 쑥 들어왔다. 카페 오는 게 뭐라고 한 발짝이 어려웠나. 헉헉대는 숨을 채 고르지 못한 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바로 건너에 앉은 젊은 여자분과 눈이 마주쳤고 우린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웃음이 예쁜 파란 눈의 여자는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읽으며 라테를 홀짝였고, 나는 휴대폰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으며 블랙커피로 손을 녹였다. 마음이 따뜻함으로 몽글 채워졌다. 아침에 몇 마디로 약간 기분이 상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예쁘게 말할 걸 미안했다고.
카페에서 혼자 싱글거리며 웃는 동안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그래도 두렵지는 않다. 또 뛰어가면 되니까,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해야지. 창문 열어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샤워하는 호사를 오늘 아침엔 꼭 누려봐야지. 행복하다. 이 기분을 오늘 하루에 가득 뿌리며 잘 지내보자. 내가 매여있던 벽돌들을 소소하게 깨 볼 수 있어서 홀로 뿌듯한 아침이다.
Good morning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