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워해서 많이 미안해
대학에 갓 입학했던 이십 대 초반부터 나는 내내 정신적인 방황을 했다. 그 시기 청년들이 할법한 진로, 꿈 이런 게 아니더라도 부모님과의 관계, 연애, 돈 그리고 나의 신체와 외모까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뭐 하나 맘 편히 답하지 못했다. 모든 게 불안정했고 불만족스러웠으며 간혹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들이 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완벽할리 없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좋은 순간들마저 부정했다.
서른 중반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지를 파악하지 못했던 게 그 원인이었던 거 같다. 내가 가진 재질이 무엇인지 ,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 어떠한 상황에서 기쁘고 마음이 편해지는지 , 누구와 어울렸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청춘의 반열에 올랐을 때 폭죽처럼 터지는 쾌락들과 낯선 것들의 달콤함에 뒤엉켜 나는 나의 내면에 조용히 질문을 던질 기회를 많이도 놓쳤다. 그저 저 우울함의 감정들이 내 자존감을 깎아먹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푸념했을 뿐. 눈앞에서 불타오르는 연애감정들을 즐겼고, 마침내 얻은 학업으로부터의 자유와 알코올에 미쳐서 어떻게 하면 더 막살아볼지 궁리하기도 했다. 히피처럼 살면 저 불안감이 다 해소될 줄만 알고 좀 더 고요하고 열심히 나를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나태하게 나를 내버려 뒀다.
아마 그때 나 자신을 잘 파악했더라면 감정에 꽂혀서 앞뒤 돌아보지 않고 나쁜 남자를 만나서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설득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또 명확한 플랜이 없으면 불안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의 성향에 맞춰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짜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성공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내가 나의 신체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 것도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나는 길쭉길쭉 타고난 체형을 갖지도 않았고 , 완벽한 외모를 갖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 신체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대한민국 평균 여성의 피지컬인데 과거의 나는 ‘몸조차 내 맘대로 안 생겼는데 내가 뭘 더 해볼 수 있겠어 ’라는 회의감에 휩싸여있었다. 어떤 예쁜 여가수가 뛰어난 외모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성공에는 외모요소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듯 말하는 인터뷰를 보며 화가 나기도 했다. 나름대로 꽤 좋은 머리, 적당한 지적호기심, 끈질기고 성실한 의지, 센스 있는 태도, 뛰어나진 않지만 호감을 줄 수 있는 인상, 많지도 않지만 부족하지 않았던 경제적 상황 등등 내가 가진 재질에는 집중하지 않고 ‘조금만 더 외모가 괜찮았다면 , 우리 집이 좀 더 풍족했다면 , 우리 아빠가 친구 아빠처럼 다정했다면 , 내 키가 5 센티만 더 컸다면.. ’ 등등 불만만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건 지성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고 억누르며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타인과 비교했으나 비교하지 않은 척 당당함을 연기했다. 아마 내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내 자아가 바스락하고 무너져 내릴 것을 느꼈기 때문에 안간힘을 다해 그 벼랑으론 가지 않으려고 나를 붙잡았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저 노력은 건강하진 않았지만 꽤나 효과가 있었다. ‘나는 나 자체로 괜찮은 사람 ’이라고 꾸며내듯 반복 암시했던 것이 다행히 정말 삶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평균의 사람으로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는데 , 사실 나는 평균이 아니라 어디서든 내 빛과 색을 입힐 수 있는 다채로움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물아홉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대대적으로 뒤바뀌고 삶을 대하는 자세나 희망도 그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달라졌다. 삶의 목표가 좀 더 원초적이고 생존에 가깝게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예전엔 돈을 참 많이 벌고 싶었는데 그때는 왜 그러고 싶었는지도 몰랐지만 아마도 더 멋진 나를 표현해 줄 물질적인 것들을 얻고 싶어서였을 것 같다. 예쁜 옷, 좋은 화장품, 철마다 다녔던 해외여행, 어쩌다 명품 등등.
아이를 키울 때는 사실 미혼일 때보다 소득격차에 따라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의 범위가 훨씬 달라지기 때문에 얼마를 버느냐에 더 집착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의 건강과 사랑, 그리고 화목함이다. 무슨 도덕책에 나오는 단어의 나열 같지만 정말이다.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 외적으로 뛰어나도 내 삶은 Fancy 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지속가능한 나의 평화와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건 미혼과 기혼의 차이는 아니다. 내가 미혼일 때 나의 재질을 좀 더 빨리 알아보았더라면 나와 좀 더 잘 맞는 배우자를 만날 순 있었을 것 같다. 또 내가 가진 장점들을 빼어나지 않은 수준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보듬었다면 과거의 내가 덜 우울하고 덜 외로웠을 텐데 싶다. 그리고 좀 더 일찍 나를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지금쯤 마음이 팔딱거리는 건강한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들이 끊이지 않고 고개를 든다.
세월이 변했고 , 그동안의 나의 선택들로 인해 그때 가졌던 것과 지금 가진 것들은 조금씩의 변화는 있다. 내 성향도 예전보단 겁이 없어졌고 ,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을 잘 정리하게 되었고 , 내가 품은 인연들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 싫은 것들을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 파고들어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마음도 조금은 포기가 되었다. 저 푼다는 마음도 결국엔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나의 오만함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니까. 미완성의 나는 계속해서 내가 가진 재질을 더 열심히 들춰보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힘쓴다. 그래야 혼자서도 , 혹은 누군가 함께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고 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가를 하면서 눈을 감고 내 몸을 만지는 명상시간이 참 좋다.
오늘도 내 머리털과 허벅지와 양팔을 따뜻하게 만져줬다.
고마워 내 몸, 너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고 너 덕분에 내 정신이 무사히 담겨서 살아있어.
그동안 미워해서 많이 미안해. 앞으로 더 잘 지내보자.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