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순간에
이거는 왜 이렇게 하신 거죠?
"..."
호흡이 가빠오고 머릿속은 하얘지면서 나 자신이 싫어진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는데 괜히 눈가가 촉촉해진 것 같고 순식간에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등골이 알싸한 것이 목욕탕 온탕에서 냉탕으로 한 번에 들어갔을 때의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서늘함이 느껴진다. 이제 나는 정말 끝나는 것인가.
이유를 물어봤는데 이유를 답할 수도 없고 목소리는 무슨 갑작스러운 성대결절이 온 환자처럼 나오지를 않고 그저 이 세상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인가 싶다.
이런 상황은 사실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것에 적응을 한다는 것도 웃기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끔찍한 이런 상황은 도무지 겪어도 겪어도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도 늘 일하는 곳에서는 칭찬받고 유망주로 낙점을 받던 나인데 이 모양 이 꼴로 물에 빠진 생쥐처럼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쫄아서 있는 모습이 스스로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나 뭐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넘어가기엔 자존심의 스크래치와 앞으로가 걱정이 된다.
사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당연한 것은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잘못되었다면 원인이 있겠지.
그게 나였든, 누군가였든, 시스템이었든 밝히고 문제 해결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함도 맞다.
다소 조금 억울하더라도.
아마 그저 그냥 그런 실수이고, 별 것 아니라고 본인도 생각이 들었다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조금은 구겨진 자존심을 끌어안고 눈 딱 감고 이야기하고 넘어갔을 텐데 아무래도 스스로 그냥 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것인지 헷갈리다 보니 그 순간 몸이 얼어버린 거다.
아마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들어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회사에서 이런 상황은 전쟁 중이라 생각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감정 공격이나 비하 공격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기에.
그렇게 정신을 잃으면 완패다. 사망이란 말이다.
기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때에 죄송합니다를 크게 말하자고 하는 이야기이거나
제가 뭘요? 그게 어때서요? 와 같은 생떼를 한 번 제대로 한 탕 벌여보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건 기세가 아니라 허세에 가까울 때가 많다.
오히려 기세는 겸손함과 자기 객관화에서 나올 때가 많이 있다.
일단 쫄지 말자는 이야기와는 결을 같이 하는 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쫄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어떻게 쫄지 않을 수 있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
내가 이 모양으로 생겼는데 어떡해요.라는 이야기와도 같은 말이다. 그건.
이 짧은 시간에 자기 자신과 마주한 당신은 이제 기세를 가질 준비를 한다.
지금 생각나는 것으로는 잘못된 이유를 바로잡기 위하여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되겠냐는 질문을 상대방이 당황할 정도의 발성과 호흡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참 애매한 것이 죄송스러움과 겸손함도 담겨야 하지만, 어디인지 모를 당당함도 느껴져야 하는 것.
설사 내가 잘못한 것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원인은 똑바로 밝혀야 죄송하다는 이야기도 명확하게 제대로 할 것 아닌가.
애매하게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할 거면 그것도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서 시간을 좀 주시면 알아오겠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라도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면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거나 해결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지게 만드는 경우들을 더러 봐왔다.
어쨌든 힘들게 기세를 가져본 당신이 얻은 소중한 시간은 아마 당신의 성장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다.
회사의 성장이나 이것을 짚어낸 상사의 성장보다도 당신은 기세를 자라게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불편한 성장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실수와 잘못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가 욕을 먹는 순간에 내가 욕먹는 이유를 알아볼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를 명확하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해냈다면 큰 한 걸음을 뗀 것이니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볼짱 다 본 것이고 이제 뭐 거리낄 것 없다.
잘못을 발견했다면 죄송합니다. 하면 되는 것이고, 다른 원인이 밝혀졌다면 그것을 해결해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같이 해결하자면서 제안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그 문제는 사실 생각해 보면 당신이 해결한 것과도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하나씩 나의 자존감을 +1씩 해나가면 좋다.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고 잘못을 범할 수 있으나 범법이나 중죄가 아니라면 해결은 되고 끝이 난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당신은 '기세'라는 것만 좀 가질 필요가 있다. 그건 누가 대신 가져줄 수 없기에.
어설프게 기세를 부리면 요것 봐라?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결국 끝으로 가면 갈수록 정당하고 지극히 깨끗한 기세를 부린 사람이 성공하고 성장하더라.
기세를 보였다고 감히 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냐며 털어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못된 것이고 언젠가는 드러나서 그 사람과 당신과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시간이 문제이지 끝은 그렇게 될 거다.
(사실 끝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대단한 설명과 이유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는 당신이 생각해 본 과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게 정당한 이유였는지, 핑계가 될지 사실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을 할 기회조차 기세가 없다면 얻을 수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발견이 되고 누군가 당신에게 지적을 하는 순간 그건 당신의 죄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의 잘못으로 끝나도 괜찮으니 기세 한 번 부려도 전혀 문제없다.
생각해 보면 기세 있는 사람들이 성장의 속도도 더 빨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닐 수도 있다)
무언가 지적이 발생한 경우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일반적으로 일을 하는 일상 속에서도 기세가 있는 사람은 아우라와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그릇이 커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의연함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대담함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려니 하는 거다.
대부분의 일에서 의연하게 큰 그릇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러려니 넘어갈 줄 알더라.
그게 기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센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보다는 내면이 단단해서 잘 부서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자는 이야기와 가깝고
강한 사람이 되어보자는 것보다는 유연해서 잘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 보자는 이야기와 더 가깝다.
기세라는 것이 늘 당신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