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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by 이일일


저희 담당자 좀 바꿔주세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도 들을 수 있다.

글로 쓰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면 마음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특히 인정욕구가 높은 사람이거나 모두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일수록

이번 기회에 모두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아주 고통스럽게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

억울하기도 하고 뭘 그렇게 잘못한 건지 영문을 모르겠기도 하다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

아마 어딘가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나는 누가 아니면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고객을 보면 참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관계를 쌓았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정도의 신뢰가 쌓였다는 것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했던 그 고객도 무언가 담당자가 실수를 했든, 오래도록 쌓여 온 불신이 있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반드시 담당자를 유지해 달라고 하는 고객에게도 그 담당자는 무엇이든 했을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아주 가끔은 '그냥'인 것도 있겠지만)


나의 첫 직장은 석유회사였다.

위계와 어깨뽕이 모든 것을 만들어주는 회사였고 흔히 말하는 짬이 전부였던 회사였다.

가족회사였기에 누구의 양아들이 높은 자리에 있고 누구의 사돈댁의 누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런 것들은 공공연하게 사내에서 이야기가 돌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나 같으면 더 조심하고 행동거지가 신경이 쓰였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입장이라면.

그리고 나의 실력에 대해 문제를 삼는 순간 낙하산 내지는 가족의 힘을 빌렸다는 증명이 되기에

실력과 성과를 유지하기 위한 압박감은 거의 수심 100m 아래를 헤엄치는 것과 같았을 것 같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늘 반복되는 일상에 반복되는 업무, 이 정도로 편해도 될까 싶은 업무 강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하며 회사를 다녔고 짤리지 않기 위하여 상사의 눈치와 회사 눈치를 보기 바빴다.

이리저리 현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삥땅 치는 돈들도 적지 않은 것 같았으나 꼬리가 잡히더라도 좌천(?)의 느낌이었지 완전히 회사에서 팽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만의 의리였을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나라에서 석유를 사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파는 일은 지극히 단순하고도 명확한 일이었고 어려움이 없었다.

현장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테니.

그것을 발전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 첫회사에서 나는 모든 현장의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였던 시절이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신입사원이 와서 이런저런 것들을 FM처럼 체크하고 다녔으니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아마 내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어도 코웃음을 쳤을 것 같다.

20대 꼬꼬마가 와서 체크리스트를 들고 이리저리 체크하는 모습이란 얼마나 우스웠을까.

나는 모두의 미움을 샀고 비밀이 없는 회사에는 금방 소문이 퍼졌으며 내가 가면 눈을 흘깃했다.

그때는 그래도 총학생회를 하고 났던 직후였어서 나의 자신감이 나름 있었던 때라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미움받거나 눈치를 받는 일이 힘든 일이라는 것도 그때 다 깨달았던 것 같다.

모두에게 사랑이나 인정을 받을 수 없음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미움으로, 싫어함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을 그때 알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6개월 정도였을까.

다행히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오해를 풀 수 있는 직무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첫 직장을 다니는 동안 내내 미움만 받고 동기들의 사랑만으로 버티고 아픔을 감당하는 불쌍한 중생이었을 거다.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에는 대단히 부지런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떤 시즌이 되면 주유소와 충전소의 거미줄을 떼러 가서 바가지차에 올라 그 높은 곳에서 빗자루 하나에 기대어 열심히 천장의 거미줄을 떼고 다녔으며

첫 실습으로 나가서 주유하는 것과 세차하는 것을 배울 때는 여름이었는데 그냥 다 벗고 하고 싶을 정도로, 소장님들이 그만하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지금도 주유소 가면 몸이 기억한다.)

어색해도 웬만한 생일들을 챙기려고 했고 가족분들의 소식들까지 외우고 안부를 물었다.

본사와 현장의 간극에서 센스가 필요한 경우에는 어떻게든 가능한 선까지 센스를 발휘해 보려 최선을 다했다.

도움이 되었던 순간들이 많았고 나는 언제부턴가 명절이면 차 안이 가득하도록 명절선물을 받게 되었다.

감개무량하면서 어떨 때는 씁쓸하기도 했던 것 같다.

(뭐 그게 현실이겠지만)


첫 직장을 다니면서 마지막 9개월 정도는 투잡, 쓰리잡을 뛰었고 그렇게 두 번째 회사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공연, 축제, 행사 등을 기획하고 총괄하게 되는 것은 참 벅찬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에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겸비한 전시를 총괄하는 PM역할을 해야 했을 때는 사실 거의 멘붕에 가까운 상태였다.

전시에는 문외한이었을뿐더러 유니티를 활용한 개발 등이 들어가고 공간 이해도와 실무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인테리어 기본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전시를 총괄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공연을 처음 할 때도 무대 설치나, 영상, 음향 등 공부해야 할 것들이 꽤 있었으나 다른 문제였다.

첫 전시를 감내하고 극복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혔던 것 같다.

잠은 고사하고 전시를 오픈하던 날 아침에는 정말 과학관에서 쓰러질 뻔했다.

(머리가 핑 돌더라.)


모든 노력들을 다 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죽을 만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들 이야기하고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절대 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도 실수들과 잘못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아서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감내하면서 지금까지 왔던 것 같고 세 번째 회사를 만나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IT회사를 함께 운영하는 단계로 넘어와서는 아예 다른 세계였고 어려움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깨닫고 알아야만 지속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사업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나는 계단식 성장을 나름대로는 이루어왔던 것 같다.


어떤 순간에는 운이 좋아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겸손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척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나 스스로도 나에게 좋아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노력이 뒷전으로 밀렸던 적이 있다. 스스로에게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잠 좋아하는 내가 잠도 줄여가며, 뭐 하나 진득하게 유지할 줄 모르는 내가 그래도 진득하게 뭐라도 해보겠다며 꾸준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라며 치부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라도 명분 삼아 이 정도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인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쉽게 하게 되면 어느 순간에는 거만한 나의 모습으로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도 있던 것 같다.

(그런다고 없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무엇인가를 꼭 이룬 것도 아닐 수 있겠지만 각자의 인생에는 빛나는 순간도 있고 어두운 순간도 있을 텐데 그 모든 것이 본인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만큼 주어지는 것 같다.

짧게 보고 가까이서 보면 인생이 비극이고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 투성이일 수도 있겠지만 멀리서 보고 돌아보고 또 지나고 나서 회고하고 해 보면 생각보다 희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 말처럼.

그냥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내가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하게 바라고 또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 돌아봤을 때


아 이 정도는 되었구나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인간으로서 우리도 성장할 수 있는 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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