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가장 큰 생존 장벽, 영어의 도전
캐나다로 이민을 결심하면서 가장 큰 걱정이자, 목표이기도 했던 도전은 단연 영어였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영어를 배워 문법과 단어에는 익숙했지만, 실용 영어보다는 진학과 취업을 위한 영어에 머물러 있었다. 막상 현지에서 실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고, 그 벽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이민 초기, 나는 대화할 때마다 주저하고 실수를 반복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내가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위축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어색함이라며 넘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색함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는 입학시험이나 취업 준비를 위한 것이었지, 생존을 위한 영어가 아니었다. 영어 실력이 곧 인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영어를 못하면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영어권 국가에서는 더욱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졌고, 점점 더 말하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영어를 배우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보다, 아는 단어를 최대한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몸짓으로 보완하는 "배짱 영어"가 더 중요했다. 한마디로, 앞뒤 가리지 않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날 마트에서 물건 위치를 묻기 위해 점원에게 질문했는데,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단어는 분명 맞았지만, 결국 철자를 하나씩 말하고 나서야 점원이 이해했다. 내가 말한 단어는 외래어였다. 외래어라면 발음이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고 있는 단어조차 전달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발음"이라는 부담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부담을 자연스럽게 "나이 탓"으로 돌렸다. "나이가 들면 배우는 속도도 느려지고, 발음도 어설퍼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민 초기에 나는 충분히 젊었는데, 왜 그렇게 쉽게 핑계를 댔을까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십 년 후의 나는 또 지금을 돌아보며 같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이민자로서 영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많은 이민자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으며 이민을 결정하지만, 막상 영어가 부족하면 오히려 더욱 위축되어 주위를 살피게 된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말 한마디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는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공기관에서 서비스를 받을 때나, 가게에서 쇼핑할 때조차 발음과 표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주저하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려면 직접 부딪혀야 하는데,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내 모습이 답답했다.
이런 고민 끝에 나는 영어 사용량을 늘리기로 했다. 한인 사회를 벗어나 캐나다 직장에 도전했지만, 막상 취업하고 나서도 바쁜 업무 탓에 영어로 대화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출퇴근길에 나누는 짧은 대화만으로는 실력이 쉽게 늘지 않았다. 때로는 "이 노력으로 한국에서 공부했으면 판검사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며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다. 영어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성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까 봐 천천히 말해주던 동료들이 점차 나의 실수를 웃어넘기며 격려해 주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그들의 배려 덕분에 점점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실수는 계속되었지만, 그것을 배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이민자들과 교류하면서도 큰 위로를 받았다. 영어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서로의 실수를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이 깨달음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즐기다 보면 어쩌면 더 게을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로 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끝이 없었다. 어느 순간 영어가 조금씩 자연스럽게 들리고, 말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영어’가 아니라 "소통하려는 태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 부족한 영어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나 역시 내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영어를 학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살면서, 영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리를 건너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다.
때때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차라리 귀머거리가 되어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지금도 영어는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캐나다 사회의 주류에 속하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다. 특히 재취업을 고려할 때 언어의 장벽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민 생활에서 영어는 결국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고 영어가 저절로 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라면 몇 주만 놀이터에서 어울려 놀아도 실력이 쑥쑥 자라겠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영어는 어렵고, 몇 마디라도 놓치면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놓친 부분에 연연하기보다 나머지라도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노력 없이 영어 실력이 늘길 기대하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소망은 변함없다. 그리고 언젠가는, 말 한마디가 두려웠던 이 날들을 헤쳐 나간다면, 그 경험이 내게 가장 큰 자산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