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속에서 자리 잡아가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시선
아내와 함께 아들 둘이 한국에서 지내던 때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이제야 같이 살면서 그들의 변화가 더욱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보며 가족 모두가 캐나다에서의 적응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동안 아내와 아들 둘이 어떻게 캐나다 생활에 적응해 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7년 동안 캐나다에서 생활한 아들들은 이미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낯선 이곳 생활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처음 캐나다에 온 아들들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마주해야 했다. 특히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새 학기를 맞아 한글을 갓 배운 상태에서 알파벳도 배우지 못한 채 캐나다 학교에 입학했다. ESL 과정을 들으며 힘든 적응을 겪었고, 어린아이에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내에게 아이들의 학교생활 고충을 들을 때마다 안쓰러웠다. 당시에는 카카오톡이나 영상 통화 같은 빠른 소통 수단이 없어, 아이들에게 그 즉시 위로의 말을 전달할 수 없었고, 비싼 국제전화나 이메일로만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불편한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들은 점차 친구들을 사귀고, 영어 실력이 빠르게 향상되어 갔고, 캐나다의 문화와 사고방식에도 익숙해져 갔다.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이기에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함께 지냈다. 캐나다는 인종차별을 엄격히 규제하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아들들은 비교적 빠르게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반면, 나는 아들들이 영어를 배우는 속도에 비해 여전히 언어의 장벽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들은 "이민 온 아이들"이라는 느낌보다는 "이미 캐나다에서 성장한 아이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대견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아들들이 영어를 더 많이 쓰면서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하다고 말할 때마다 모국어를 잃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여전히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했다.
이제 아들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우리 가정은 또다시 환경이 바뀌었다. 큰아들은 캐나다가 아닌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작은아들은 캐나다에 남았다. 그가 캐나다 친구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큰아들과는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되면서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는 캐나다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걱정이 조금 덜어졌다.
"품 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자식들이 떠나고 나니 가끔은 남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월이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실감하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들이 각자의 삶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이제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동참하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큰아들은 한국에서, 작은아들은 캐나다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캐나다 사회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