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캐나다에서의 새 출발, 그리고 우리가 꿈꾸던 집

캐나다 땅에서 마주한 새로운 시작과 첫 집

by 김종섭

무려 10시간의 긴 비행 끝에 마침내 캐나다 밴쿠버에 도착했다. 7년 동안 가족을 만나러 일 년에 한두 번씩 오갔던 도시지만, 이번만큼은 느낌이 달랐다. 이제 나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이민자로서 이 땅을 밟고 있었다.

공항 문을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가슴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였다. 이 도시에서의 삶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궁금하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이 스며들었다.


공항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온통 영어뿐이었다. 빠르게 오가는 말들이 귀를 스치듯 지나갔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대화가 여기에서는 쉽지 않을 거라는 현실이 갑자기 밀려왔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밀려왔다. 갑작스럽게 결정한 이민, 그리고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영어. 이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막막함이 커져갔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짐을 옮겨 실었다. 가방 하나하나가 마치 새로운 삶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트렁크를 닫으며 짧은 순간, "이 한 짐으로 정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하는 길. 익숙한 듯하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거리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가족이 처음 정착했던 곳

공항에서 곧장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아내는 차를 익숙한 아파트 단지로 몰았다. 창밖을 보니 가족이 처음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머물렀던 렌트 아파트였다. 3층짜리 단출한 건물, 낯선 땅에서 아내와 아들들이 처음으로 둥지를 틀었던 곳. 생소한 환경과 좁은 공간 속에서도, 가족은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갔다.


이곳은 내게도 익숙한 장소였다. 가족을 방문할 때마다 이 아파트에 머물렀고, 베란다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노을을 보며 아내와 아이들이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텼다는 사실을. 아내는 이곳에서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보금자리를 찾으려 부지런히 발로 뛰었다.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새로운 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새 집을 드디어 직접 마주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설렘과 긴장감이 뒤섞인 채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보금자리, 그리고 새로운 시작

눈앞에 펼쳐진 집은 앞뒤로 정원이 딸린 아담한 2층 주택이었다. 뒷마당에는 테라스와 바비큐 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1년 사이 아내는 우리 가족을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집을 둘러보는 동안 설렘과 낯섦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국에서는 늘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넓은 마당, 여유로운 실내 공간. 한국에서는 부족했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하지만 집을 관리하는 일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봄과 여름이면 잔디를 깎아야 했고, 가을이면 지붕 위 낙엽을 치워야 했다. 겨울에는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캐나다에서의 삶을 하나씩 배워갔다.


아내는 집을 고를 때 아이들의 학교와 생활환경을 가장 먼저 고려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금세 이웃들과 어울리며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다. 캐나다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캐나다에 정착과 이곳 지역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싼 렌트비 걱정에서 벗어나 한층 더 안정된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예전부터 “유니크 넘버(Unique Number)"가 있는 집을 가지고 싶다고 하던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이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문에 주인의 명패가 걸리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주소 자체가 우리 가족의 집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만약 이 집이 아니었다면, 캐나다에서의 첫 생활은 훨씬 더 막막하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덜 힘들게 이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캐나다 생활은 이 집에서 시작되었다. 여전히 낯선 땅이지만, 이곳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씩 짐을 내려놓고 적응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이 집에서 우리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