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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로 살아가기

기러기 생활 7년의 고독과 책임, 그리고 성장

by 김종섭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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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아내와 두 아들이 캐나다로 떠났다. 그들은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과 학업을 시작하기 위해 떠났고, 나는 가족이 있던 자리를 비운 채 한국의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남았다. 그 결정은 애들의 교육이라는 목적이 컸고, 가족의 캐나다행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 고민하지 않고 별다른 동요 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때는 7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그 시간을 혼자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저 가족을 위해, 애들의 미래를 위해 떠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내와 두 아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고, 그리움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 각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혼자의 생활이 예상과는 달리 점차 익숙해져 갔다. '반방의 고독'이라 표현했을까. 처음에는 퇴근하고 텅 빈 집에 들어오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왔고, 하루하루가 그리움 속에서 흘러갔다. 매일 아침, 애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부산을 떨던 시간들이 그리워졌고, 아내와 아들의 목소리, 그들의 웃음소리도 그리웠다. 그들의 부재는 나에게 큰 공허감을 안겨주었고,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그 허전함은 점점 더 커졌다. 그 시절, 카톡도 없었고, 값비싼 국제전화에 의존해야 했다. 다행히 다음 카페를 통해 가족 카페를 만들고, 사진을 올리며 그리움을 나눴다. 지금처럼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카톡이나 화상통화가 가능했다면, 그리움이 조금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움만으로는 이 삶을 채울 수 없었다. 기러기 아빠로서 나는 점차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직장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며, 가족과의 전화 통화가 내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움이 너무 커서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그 감정도 시간이 지나며 묵묵히 견디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아마 친구들도 가족과 보내야 할 시간이 우선이었기에, 자발적으로 만남을 피했던 것 같다. 주말과 휴일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등산과 캠핑을 찾아 시작했다. 특히 겨울 캠핑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런 즐거움에서 오히려 큰 기쁨을 찾았다.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기에, 기러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내와 아이들 없이 7년을 보내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었고,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견딘 건지 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주어진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바쁜 직장 생활 덕분이었다. 나 혼자의 삶,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삶, 각기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 당시 나는 다소 충동적이고 갑작스러운 선택을 한 셈이었다.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고, 오직 애들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기러기 아빠로서의 생활을 받아들였다.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인생 얼마나 산다고 가족이 그 많은 시간 동안 떨어져 사냐"고 충고를 들었지만, 그 말을 더 이상 듣기 싫어서 그 이후로는 어디에서든 '기러기 아빠'라는 이야기는 나만의 불편한 주제가 되었다.


7년이라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요즘은 가끔 자신에게 해답을 묻곤 한다. 내 인생에서, 그것도 젊은 날에 가족 없이 지낸 7년은 길었을까, 짧았을까? 세월의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이 내 인생과 가족의 삶에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해본다. 머리 속에는 속도라는 것이 존재했다. 가끔은 가장 빠르게 지나간 짧은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가끔은 시계가 멈춘 듯 느껴지는 긴 시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시간은 생각 속에서도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했다. 7년이라는 긴 여정을 지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는 것은 아내와 아이들이 가는 길을 지지하는 중요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것은 주변의 시선 생각과는 달리 내 삶에서 특별하고도 중요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믿었다.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더 단단한 유대감을 형성했고, 나는 더 많은 인내와 성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후회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기러기 생활 이후 이민 생활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았고, 많은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했다. 기러기 생활 기간 동안 그리움과 고독 속에서도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을 잃지 않았다. 그 시간이 내게 큰 의미를 주었다. 이 삶은 분명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그 길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이 되었음을 이제는 확신하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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