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기다림 끝, 가족에게로 가는 길
아내와 두 아들을 먼저 캐나다로 떠나보냈다. 처음엔 길어야 1년, 아무리 길어도 2년이면 다시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험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 어느새 몇 년이 흘러버렸다.
처음엔 곧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시간이 쌓일수록 막연함과 불안이 마음 한편을 채워갔다. 가족을 떠나보낸 후의 날들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흘러갔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냈을 뿐, 외롭다는 감정조차 무뎌질 만큼 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살아왔지만, 사실 그날을 결정해야 하는 건 바로 나라는 걸. 가장으로서 내가 결단해야 비로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됐다.
기러기 아빠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혼자 밥을 차리고, 주부 역할까지 해내야 했다. 누군가는 "라면 하나 끓일 정도면 괜찮지 않냐"고 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캠핑 가서 아내 대신 하루이틀 불 앞에 서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그리움은 점점 외로움으로 변했고, 어느새 나는 외로움마저 익숙해졌다. 마치 비 오는 날 외로움이 찾아오듯, 어느 순간부터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외로움조차 내 몫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달래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깨달았다. 이 생활을 버티려면 혼자서도 즐길 취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방학마다 가족은 잠시 한국에 들어왔고, 나는 명절과 휴가를 이용해 캐나다로 향했다. 캐리어엔 늘 가족이 좋아할 선물들로 가득 채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생각보다 "각자의 삶을 따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더 커졌다.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고, 가족이지만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두 번의 교통사고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건이었다.
첫 번째 사고는 기러기 생활 5년째 되던 해였다. 출장길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차량이 전복됐다. 차는 터널 벽에 부딪히고 몇 바퀴나 굴렀다. 겨우 문을 열고 나와 지나가는 차량을 수신호로 막아섰다. 그 순간 온몸을 지배한 건 "살고 싶다"는 본능이었다. 정신을 잃지 않았던 건 끝까지 가족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건널목에서 아이를 구하려 차로 뛰어드는 부모처럼, 내 안의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과 경찰은 내 상태를 보고 "천운"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날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내 가족은 한국에서 내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도 슬픈 밤이었다. 처음으로 "가족이 내 삶의 이유구나"라는 걸 가슴 깊이 새겼다.
하지만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7년째 되던 해, 또 한 번의 사고가 찾아왔다. 출근길 사거리에서 상대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고, 조수석에 있던 사람이 약지 탈골상을 입었다. 경찰은 "벌금형 정도로 끝날 거다" 했지만, 며칠 후 날아온 법원의 통지서가 전달되었고 재판 결과는 뜻밖에도 "징역 1개월, 집행유예 2년"이었다.
초범이라 양형이라는 선처를 받았지만, 이 사건은 내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그 무렵, 아내가 말했다.이젠 기러기 생활 그만하고 가족과 같이 살자고 했다. "캐나다에 와서 뭐든 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어요?"
그 말이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전에 작은 아이들의 말했던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빠, 우리 가족 저녁 식탁에 함께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싶어요."
결국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두 번의 사고는 내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였다.첫 번째 사고는 "살아야 한다"는 신호였고, 두 번째 사고는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다. 미련 없이 한국 생활을 접기로 했다.
다행히 아파트도 생각보다 빨리 처분됐다. 캐나다로 가져갈 짐도 옷가지 몇 개뿐이었다. 회사에서는 마지막 출근 전날까지 내게 차를 내줬고, 나는 며칠 동안 짧은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014년 1월, 7년의 기러기 생활을 끝내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 여정을 마치고, 마침내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