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더욱 실감한 한국과의 차이
살다 보면 아플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곳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땐, 나도 그저 한국에서처럼 병원에 가면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몸이 아프고 나서야, 여긴 ‘그냥 병원에 간다’는 게 통하지 않는 나라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한국에선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바로 동네 병원에 들렀다. 예약 없이도 대기 시간 10분 안팎이면 진료를 받고, 약까지 타 나올 수 있었다. 이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에 익숙했던 나에게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처음부터 벽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모든 병원 이용의 출발점이 '가정의(GP, General Practitioner)'다. 무작정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없고, 반드시 먼저 가정의를 통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가정의를 정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원이 다 찬 병원이 대부분이었고, 한참을 기다려 결원이 생겨야 겨우 등록할 수 있었다. 새로 온 이민자가 겪는 흔한 과정이지만, 막상 겪어보니 그 기다림이 꽤 답답했다.
다행히 몇 주 후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결국 한인 가정의를 지정할 수 있었다. 클리닉은 차로 20분 거리였지만,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급할 때 곧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 아플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병원에 가는 일이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진료 과정도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캐나다의 가정의는 대부분의 질환을 1차적으로 진단하고, 필요할 경우 전문의에게 의뢰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 ‘의뢰’는 단순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개월의 대기 시간을 감수해야 하는 절차다. 예를 들어 몸에 이상 증상이 있어 가정의에게 진료를 받았더라도, 전문의를 만나기 위해서는 몇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긴 기다림 속에서 증상이 더 악화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고, 마치 치료가 아닌 기다림 속에서 병이 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의료 시스템은 한국에서와는 너무 달랐다. 처음엔 불만도 많았고, ‘내가 왜 이민을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의 빠르고 친절한 의료에 익숙한 나에겐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시스템이 완전히 ‘나쁘다’ 고만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캐나다의 의료 시스템은 과잉 진료를 방지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우선시한다. 응급 상황이 아닌 이상, 빠른 진료를 받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경제적인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이곳의 의료 구조는 ‘효율’보다는 ‘형평성’을 지향한다. 즉,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은 속도보다는 공정한 분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료비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주지만, 반면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피할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캐나다 의료의 현실이다.
결국,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이 시스템 안에서 적응해 가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예전처럼 불만을 터뜨리기보단, 병원에 가야 할 상황을 대비해 미리 조치하고, 작은 증상은 스스로 관리하려 애쓴다.
한편으론 ‘아프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여기선 그 말이 현실적인 다짐이 된다.
완전히 익숙해졌다고는 못 하지만, 이제는 이 시스템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고 있다. 한국과는 다른 구조 속에서,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아프고, 또 새로운 방식으로 회복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