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현실 사이, 흔들리는 마음의 무게
한국은 내게 모국이자, 혈육과도 같은 존재다. 이민을 온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한국 소식을 챙긴다. 비단 나뿐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한국 동정을 살펴보고 있을 것이다. 고국은 어디에 있든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혈육의 정과도 같다.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나 살다 보니, 오히려 한국에 사는 이들보다 더 열심히 고국의 소식을 챙기는 듯하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이민자들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더러 있다. 마치 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처럼 여기는 경향이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순하게 생각한 이민자의 선입견일수도 있긴 하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옮겨간 사람이 고향을 버린 것이 아니듯,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긴 이민자의 선택이라 가볍게 바라봐 주면 될듯하다.
한국을 방문하면 포근한 감정이 먼저 몰려온다. 물론 오랜만에 가면 왠지 낯선 감정도 든다. 덩그러니 아무도 없는 도시에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든 것이 익숙해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고, 차츰 편안해져 간다. 무엇보다 말이 편해 좋다. 어디를 가든 긴장이 풀리고,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이 놓인다. 깊이 있는 대화가 아니어도 마음 가는 대로 말을 풀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있다.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오히려 같은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꺼리게 될 때가 있다. 누구에게 감시받는 듯한 시선, 사생활이 들여다보이는 듯한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이민을 결심한 이유도 그런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민을 와서도,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어딘가 모르게 보이지 않는 벽이 여전히 느껴진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다수가 그렇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나는 한국을 다녀올 때마다 많은 생각에 잠긴다. 볼거리와 먹을거리, 익숙한 환경과 문화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때로는 이민을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그럴 때면,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이 더 또렷해진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이민자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 감정 노선이 불분명한 이유에서 나는 여전히 한국과 캐나다 사이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민자들 중에는 한국에 있는 동안 불편함을 더 크게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민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인간관계, 고질적인 사회 구조, 차보다 사람이 더 먼저인 것 같은 인도 문화 등은 어느새 낯설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다시 마주하면서 문득 지난날의 내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과거 한국 사회에 대한 불신과 피로, 관계의 압박 속에서 ‘이민이나 갈까’라는 생각이 처음 떠올랐던 그 순간이 다시 떠오르는 듯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체계에 환멸을 느낄 때 "이민이나 갈까"한 번쯤 내뱉는 일상적인 언어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민자라는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완전히 자유롭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완전히 정착했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분명 편안하지만, 그 안에는 고요한 쓸쓸함도 공존한다. 반대로 한국은 모든 것이 익숙하지만, 돌아가 살고 싶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모국이지만, 또다시 이민처럼 역이민이라는 어려운 서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캐나다로 돌아와 다시 일상을 마주할 때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곳이 더 내 자리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어디에 있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시작한다. 이 갈등은 아마도 평생 이민자에게 따라붙는 그림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도 끝도 없는 불치병 같은 감정이다.
결국 이민 생활도 사람의 성향이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체질이 있다. 누군가는 김치 없으면 못 산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스파게티가 더 맞는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이민이 체질에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살아가든 그곳에서 삶을 살아낼 자신을 갖는 것이다. 오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완전한 적응의 삶을 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