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캐나다에서 다시 그려보는 노후의 지도

은퇴,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by 김종섭

캐나다 이민 생활은 늘 긴장감 속에 새로운 시작의 연속이었다. 낯선 곳에 뿌리내리기 위해 적응하며 애쓰던 날들이 쌓이고, 오십 대 초반에 캐나다 땅을 밟았던 중년 신사는 어느덧 은퇴를 이야기하고 있다.


'은퇴'라는 단어 앞에서 자, 처음 이민 올 때 품었던 기대와 두려움처럼 은퇴 후 또 다른 생활 리듬을 바꾸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나의 마지막 챕터를 써야 할까 고민스럽기만 하다.


캐나다는 비교적 안정된 연금 제도와 노년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CPP(Canada Pension Plan)와 OAS(Old Age Security)로 기본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의료비가 전액 국가에서 부담된다는 점은 몇 년 전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게 한 동기 중 하나가 되었다. 캐나다에 살면서도 국적을 버리고 또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마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정체성마저 다 버리는 듯한 느낌에 후회도 줄곧 했다.


하지만 많은 한국 이민자들이 캐나다 생활 자체가 무료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자국민인 캐나다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지만, 후천적 국적 취득자에게는 캐나다 정서가 쉽게 스며들지 않는다. 물론 이민과 함께 국적 취득까지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선택한 일이겠지만, 사실 나는 최종적인 노후까지 고려하고 이민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살아보면서 시간을 가지고 결정하자는 심정으로 이민에 나섰었다.


요즘은 미래 노후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이 들어 마지막을 맞이할 곳은 과연 여기일까? 익숙한 고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이 땅에서 조용히 나의 계절을 마무리할까?


이런 고민은 결국 전적으로 경제적인 사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만든다. 경제적 제약이 없다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내겐 고민할 이유도 없이 최우선이었을 것이다. 아내와도 노후에 관해 함께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지금 상황으로는 캐나다를 떠난다고 해도 큰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시간을 보내온 터전이기 때문에 가끔은 떠올릴 가치가 충분하다고만 생각이 든다. 이민 초기부터 지금까지, 캐나다보다는 한국이 내겐 더 어울린다고 느끼고 살았다. 캐나다의 장점도 인정하지만, 뿌리에 근거한 정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 삶이 과연 이민자의 삶인가, 아니면 무단 점령자의 삶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캐나다라는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나는 이곳의 진짜 구성원인가? 아니면 그저 자리를 빌려 살고 있는 것인가? 무단 점령자처럼 이방인으로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이리저리 생각해도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노후 계획이란 하나의 정답이 있는 퍼즐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여백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퍼즐을 완성하기도 전에 계획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을 정비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고집하기보다는, 가끔은 함께 식사하는 이의 입맛에 맞춰 함께 맛보는 마음처럼, 가족이 원하는 노후의 방향을 함께 나누고 존중해 가기로 했다. 특히, 노후를 함께할 아내의 생각을 최우선으로 존중하려 한다.


어디에 뿌리내리든, 그곳에서 따뜻한 하루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여행이자, 나의 사명일 것이다. 물론 아직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허락되지 않은 두려움이 울타리를 치고 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본다.


요즘은 거리에서도, 카페에서도, 커뮤니티에서도 노인들의 일상 동선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내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 과연 이 생활 패턴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노후에 걸쳐 있는 삶이 다시 또 다른 정착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소보다도 마음의 상태다. 천국과 지옥은 마음속에 있다는 흔한 말이지만, 이제는 그 말의 진심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어디에 머물든, 따뜻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그래야 비로소 어디든 나만의 천국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