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은퇴 사이, 다시 발견하는 일상의 의미
아침은 전쟁과 같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은 언제나 몸의 고통을 동반한다. 늘 ‘오분만 더’라는 바람이 뒤따랐다. 그 짧은 시간이 주는 소중함은 아침마다 절실했지만, 정작 일상 속에서는 잊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날 때 맞는 그 짧은 고통은 어김없이 반복되는 작은 의식 같았다. 그러나 늘 곧 사라지곤 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아침에 일어나는 고통은 더 크게 다가왔다. 매일같이 치러야 하는 아침과의 전쟁 또한 늘 예고되어 있었다. 전날 술자리가 길어진 날이면 숙취라는 적이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아침마다 주어진 ‘미션’ 같았다.
출근길 역시 전투였다.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든, 자가용 운전대를 잡든, 이미 절반의 힘은 길 위에 흘려보내야 했다. 정작 회사 문을 열기도 전에 마음과 몸이 지쳐버리곤 했다.
회사에 도착하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회의와 보고, 상사의 잔소리, 일에 따른 스트레스까지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직장인의 하루는 크고 작은 전투의 연속이었다. 물론 ‘자아실현’이나 ‘자기계발’ 같은 근사한 말이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내걸리곤 했지만, 그것들이 과연 내 삶을 진짜로 지탱해 주는 가치였는지 늘 의문이 남았다.
그럼에도 오랜 직장 생활 속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삶을 살아내기 위한 의무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소진이 더 크게 다가왔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그저 묵묵히 시간 안에 목표만 달성하면 되었지만, 마음을 쓰는 일은 하루 전체를 삼켜버렸다. 이민 이후 한국에서 하던 일과는 달리 몸으로 하는 노동을 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곳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육체의 무거움’이 아니라 ‘정신의 무게’였다.
은퇴 후에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여유 속에서 잡념이 늘어났다. 하지 않아도 될 생각,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될 기억들이 줄줄이 고개를 들었다. 그 잡념 속에는 즐거웠던 장면들보다는, 서운하고 아쉬웠던 순간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면, 후회와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미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냈기에, 그곳으로 돌아가 반복할 이유는 없다고 느낀다.
대신 지금은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우리 생활 속에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소한 기쁨 중 하나다. 그중 하나가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는 일상이다. 이전에는 드라마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고, 떠오르는 건 어렸을 때 보았던 연속극 몇 편이 전부였다.
주말 드라마 한 편, 혹은 재방송을 이어 보며 다음 주를 기다리는 설렘을 함께 나눈다. 문득 생각한다. 일에도 드라마처럼 ‘다음’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드라마는 인생을 압축해 보여주고, 배우를 따라 웃고 울며 내 삶의 여러 장면을 다시 살아내게 한다. 드라마는 결국 해피엔딩을 지향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굴곡과 마주한다. 어쩌면 그 굴곡 속에서 얻는 감정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흔적일 것이다.
어제는 아들과 함께 토론토로 보낼 물건이 있어 한 쉬핑회사를 찾았다. 짐을 부친 뒤, 아들이 하는 일 중 수출 관련된 일이 있어 화물 운송 상담을 받기 위해 위층 사무실로 안내받아 회의실에 앉았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직원이 나타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직장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순간 일어났다.
그동안 은퇴 후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직장생활의 힘든 기억만 되새기며 살았던 나에게는 작은 반전 같았다. 어쩌면 그 치열한 순간 속에도 보람이라는 작은 도파민이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미처 그러한 소중한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렇게 새로운 길 위에서 오늘이라는 또 다른 하루를 마주하고 돌아왔다. 돌아보면 직장이 주는 의미는 아침 전쟁 같은 고단함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려 애쓰던 나 자신,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야말로 내 삶의 빛이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