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제삿날에 건넨 아들의 위로

탄생과 죽음을 함께 기억하며, 가족과 기억을 나누는 특별한 하루

by 김종섭

오늘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2년이 되어가는 날이다. 제사도, 가족이 모이는 추모행사도 없었다. 사실 내일이 내 생일이라 하루를 앞당겨, 어머니 제삿날인 오늘을 생일 겸 어머니를 기억하는 하루로 계획했었다. 탄생과 죽음이 함께하는 날, 의미는 죽은 이를 기억하고 산자를 축하해 주는 기념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일이 휴일이라, 좀 더 편안한 시간대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해 하루를 미루었다.


오늘 하루 동안 어머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생각 속 기억에는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아쉬운 순간들만이 가득했다. 그것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생겨나는 기억이며, 동시에 후회의 감정이기도 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서울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어머니를 잠시 뵙고 왔을 텐데, 오늘은 마음으로라도 함께 하기로 했다.


저녁 늦게 작은 아들이 전화를 해왔다.

“아빠, 괜찮아요?”

아들에게는 할머니이지만, 나에게는 엄마이기에 아들은 아빠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전화를 한 듯했다. 위로의 순간은 아들의 말투에 담긴 부드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거의 두 시간 정도 통화한 듯하다. 관심사는 장르 없이 정치와 경제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눴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소한 것까지 종알거리듯 아들은 아빠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사춘기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렇게 형식 이상의 긴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큰아들과는 매일 가족 카톡과 보이스톡을 통해 거의 매일 일상을 소통하지만, 작은 아들은 가까이 있음에도 대화가 적다. 처음 가족 카톡방을 만들었을 때도 참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소소한 일상 대화가 자연스럽게 미뤄지기 시작했다. 흔히 작은 아들을 칭찬하거나 격려할 일이 있으면 아내를 통해 전달되었는데, 아들은 늘 아빠 입에서 직접 듣고 싶어 했다. 아마도 내가 대화와 표정 관리가 부족해 생겨난 침묵이었을지도 모른다.


제사는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그 추모의 시간을 계기로 함께 모인다는 의미도 있다.


예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부산 출장 중, 관련 업체 분과 술 한 잔을 마신 적이 있다. 그때 아들이 휴가를 나와 거실에서 엄마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안방에서 벽 너머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 부산 사람들은 대부분 겉으로 무뚝뚝해 보여도, 마음 한편에는 늘 따뜻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때 그분의 말씀처럼, 나 역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아들과의 모처럼 표현의 벽을 허물고, 예전에 어머니와의 추억을 함께 떠올리며 아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 어머니의 제사이자, 아들에게는 할머니의 제사인 오늘은, 특별함을 길 위에서 오늘의 이야기로 모아가는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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