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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특산물인 순무, 캐나다 월마트에도 있었다

고향의 특산물이라 믿어온 순무, 머나먼 캐나다에서 다시 마주한 순간

by 김종섭

월마트 야채 코너를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잠시 멈추어 섰다가 매번 고개를 갸웃하게 하고 다시 지나간다.


바로 순무와 닮아 있는 채소 때문이다. 하얗고 둥근 모양을 한 채소가 고향에서 재배되는 순무와 너무 흡사하게 닮아있다. 매번 궁금하면서도 한 번을 사서 맛을 본 적은 없다. ‘혹시 순무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설마 캐나다 월마트까지 강화 순무가 수출되었겠어?’ 하고 의식해서 멈춰 섰다가도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냥 지나치길 반복해 왔다.

순무는 화문석. 인삼과 함께 강화의 특산물 중 하나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에게서는 순무는 흙과 바람, 기후 조건이 맞아 유일하게 강화에서만 지배된다는 말을 듣고 컸다.

오늘도 다른 야채를 고르다 결국 순무와 닮은 채소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매번 아내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거… 강화에서 재배되는 순무 같지 않아?”
아내는 늘 똑같은 질문을 하는 나에게 늘 똑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순무 맞을 거예요.”

"하나 사서 먹어 볼까요"

아내는 늘 같은 대답이지만 나는 사실, 하나 사서 먹으면 궁금증이 해소될 일을 미련하게 궁금증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꼭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어 GPT에게 물어보았다.

“ 사진에 있는 것 순무 맞아?”
“네, 순무가 맞습니다. 순무는 세계 곳곳에서 재배됩니다.”

몇 년 동안 마음 한구석 궁금증을 붙잡고 있던 괜한 행동이 왠지 묵직한 물음표가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고향에서만 나는 귀한 채소라고 여겼던 순무가 세계 곳곳에서 흔히 지배되는 채소라는 것을 알고 어딘가 나만의 고향 신화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누구나 삶에서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사실, 고향에서만, 오직 나만이, 그리고 우리 가정에서만 고유하게 간직할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낯선 지역에서 깨진다. 내가 소중히 여겼던 그 특별한 것이 나만이 아닌, 우리 가정만이 아닌, 어디서나 발견되는 특별하지 않은 흔한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묘한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의 거짓으로 진실처럼 묻혀 있던 허탈감은 아니지만, 혼자 오랜 시간 믿음을 지킨 허탈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처럼 고향 순무와 연결된 나의 기억만큼은 결코 흔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살아보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자연스레 겪게 될 것이다.


오늘 궁금증이 풀리고, 문득 강화 순무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들. 맛과 느낌, 그 시절의 기억까지 아련하게 떠오른다. 순무는 일반 무로 담근 김치와는 확실히 다른 풍미가 있다. 겨울이면 어머니가 순무청을 다듬던 모습, 뿌리에서 올라오던 은근한 단맛과 순무청의 쌉싸름함, 숙성되며 퍼지던 겨자 향… 모든 것이 내게 ‘고향의 맛’이자 겨울로 가는 계절의 냄새와 같았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순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스테이크 옆 구운 채소, 따뜻한 수프 재료, 감자를 대신한 으깬 요리로. 같은 순무라도 환경과 문화에 따라 쓰임새가 이렇게 달라진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고 낯설었다.


오래도록 품어 온 감정은 항상 맛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고향은 멀어졌으나, 혀끝만은 여전히 그곳을 기억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사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도 틀림없이 각자 고향의 특별한 맛이 깊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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