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는 약국에서도 예방접종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약국에서도 예방접종을 받는다. 주사 맞을 떠오른 어린 기억
약국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려고 소매를 걷는 순간, 나는 아직도 바늘 앞에서 긴장하는 60대라는 사실을 알고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몇 달 전 팔 봉합 부위에 문제가 생겨 패밀리 닥터에게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들렀다. 아내는 “약국에 온 김에 독감 주사도 맞고 가요.”라고 권했다.
캐나다에서는 병원이 아닌 약국에서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흔하다. 독감 백신은 물론 파상풍 같은 정기 예방주사도 약사에게 맞는다. 한국에서 약국 주사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 다소 낯설었다.
약사는 어깨 아래 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닦더니 가볍게 말했다. “금방 끝나요.” 바늘이 피부에 닿는 순간은 정말 짧았다. 통증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주사는 하나도 아프지도 않아요.” “제가 주사 넣는 기술이 좋아서 그래요.” 약사의 농담에 나와 아내는 동시에 웃음을 보였다.
▲ 약국에서 아내가 독감 예방접종을 받는 모습. 캐나다에서는 병원이 아닌 약국에서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일상적이다. 주사를 맞기 전의 아내 얼굴에는 살짝 긴장한 기색이 묻어 있다하지만 늘 주사를 맞을 때마다 공포스러운 긴장이 찾아온다. 주사는 아픈 것보다 ‘날카로운 바늘이 나를 찌른다’는 느낌 자체가 두려웠다. 아마도 어린 시절 학교에서 단체 예방접종을 받던 경험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주사 맞기 전날 밤 잠을 설치고, 다음 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등교하던 그 시절의 두려움은 나이가 들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는 맞기 전보다, 막상 맞을 때가 더 아팠다.
물론 약국에서만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가정의(Family Doctor) 병원이나 클리닉에서도 등록된 환자에 한해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백신 재고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전 예약이 필수이다.
나는 매년 집 근처 약국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받아왔다. 약국은 예약이 필요 없고, 신분증만 지참하면 누구나 접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동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등록된 클리닉에서 예방접종을 받아본 적이 없다.또한, 각 지역에는 공중보건 클리닉(Public Health Clinic, 한국의 보건소 격)이 있다. 이곳도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예방접종이 가능하지만, 대기줄이 길어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다.
이번에 맞은 독감 주사는 무료였다. 캐나다는 주정부 의료보험(MSP 등)이 대부분의 의료 서비스를 부담해 진료, 검사, 입원 등 병원비가 전액 무료이다. 물론 예방접종 역시 무료이다. 다만 처방약은 개인 부담이지만, 약값이 크게 부담될 정도로 비싸지는 않다. 이민자로서 이런 시스템은 매번 고맙게 느껴진다.
작년에도 독감 주사를 맞고 겨울을 건강하게 보냈다. 올해도 접종 후 “이번 겨울도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겠지”라는 작은 기대가 생긴다. 어쩌면 백신이 주는 효과 중 하나는 몸이 아니라 마음을 지켜주는 안도감인지도 모른다.
약국을 나오며 문득 어린 시절 주사 앞에서 겁에 질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랐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오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나이 들수록 작은 예방 하나가 주는 든든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