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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가을이 저문 자리에서 늦가을이 스쳐 지나간다

풍요 뒤에 남은 고요와 생명들의 사연, 그리고 나의 늦가을

by 김종섭

늦가을마저 한 발 한 발 뒷걸음치며 멀어져 간다. 이제 떠날 시간을 알아챈 듯, 올해도 찬란했노라 속삭이며 우리 곁에서 천천히 멀어지는 계절의 풍요로움을 떠올리면 늘 가을이 먼저 생각나지만, 자연 속에 갇힌 까마귀에게는 어쩌면 또 다른 빈곤의 계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길을 걷다 보니, 잔디밭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여기저기 파여 있었다. 봄철이면 잔디에 숨구멍을 내기 위해 작은 구멍을 뚫어두지만, 이번에 본 자리들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누군가 밭을 깊고 넓게 갈아엎어 놓은 듯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 이유를 보았다. 까마귀 두 마리가 잔디밭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땅속 깊은 곳의 지렁이와 작은 해충을 찾아, 하나의 부리로 그 넓은 잔디밭을 뒤집는 까마귀의 모습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생존의 몸짓이었다.


그날을 지나고 보니, 요즘 곳곳에서 파헤쳐진 잔디밭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을의 풍요가 저들에게는 닿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러고 보면, 계절의 넉넉함도 모든 생명에게 공평하게 흐르지는 않는 듯하다.

길가에는 가지가 찢어질 듯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사과나무 아래에는 쓸쓸히 떨어진 낙과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낙과 하나를 들어보니, 새들이 부리로 조금 먹다가 떨어뜨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길가의 만찬 같은 과일들도, 새들에게는 풍요의 맛을 온전히 누리기엔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가을의 넉넉함조차 까마귀 같은 생명들에게는 유난히 멀게만 느껴진다.

며칠 전 산책길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기도 했다. 나무둥지 위에 작은 먹이를 올려놓고 자유롭게 가을을 즐기던 다람쥐. 그 모습과 달리,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어느 현관 앞에서 먹이를 찾는 칸쿤(너구리)과 마주쳤다. 우리의 인기척에 녀석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눈빛을 날카롭게 치켜세운 채 우리를 응시했다. 경계와 허기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 야생의 눈빛은, 어쩐지 늦가을의 쓸쓸함과 닮아 있었다.

한여름의 산책길에서는 곰의 배설물을 유난히 많이 보았다. 그 속에 가득 들어 있던 열매의 씨앗들을 떠올리면, 오히려 여름이 가을보다 더 풍요였던 계절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만추의 시간. 나무 끝에 겨우 매달린 낙엽처럼, 얼마 남지 않은 늦가을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낙엽이 떨어질 나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다가올 늦가을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요즘 들어 부쩍 들고, 서늘한 서글픔이 불현듯 가슴 어딘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붉게 타올랐던 잎새들도 마지막 순간을 불사르듯 찬란한 끝을 밀어 올리고는 힘없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메인 화면에 한주내내 비소식이다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오는 이 시간,
밴쿠버의 하늘은 한 주 내내 이어지는 비 예보로 더욱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의 정취를 만든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계절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듯한 고요한 울음 같은 소리가 서서히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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