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사 이후, 아들 덕분에 종친회장과 연락이 이어졌다
캐나다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과 다르다. 유난히 겨울밤이 길고, 비가 많다. 오늘도 비와 하루의 보폭을 맞추었다. 혹시나 비가 아닌 눈을 기다리지만 좀처럼 겨울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지 못한 겨울을 여전히 비가 내린다. 비는 도시 전체를 눅눅하게 적셔놓고 마음까지 습하게 만든다. 비가 오래 내리는 겨울이면 괜스레 마음이 눅눅해지고, 나도 모르게 옛일들을 더 자주 떠올리게 된다. 이맘때면 마음 관리, 멘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흐릿한 계절의 한복판에서, 뜻밖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 찾아왔다.
아들이 해외에서까지 일로 인해 종친회장님을 만났고, 그 인연 덕분에 종친회장님의 초대를 받아 ‘세일사’라는 일 년에 한 번 지내는 제사에 다녀왔다. 해외 출장지에서 종친회장님을 만났다는 아들의 말에, 멀리 캐나다에서 지켜보는 나에게는, 아빠를 대신한 아들의 행보가 그저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종친회에 관한 내용의 글 두 편을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첫 번째 기사인 「해외서 종친회장 만난 아들, ‘뿌리’를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사 「아들이 대신 다녀온 세일사, 60세에 비로소 깨달은 ‘뿌리의 힘’」이라는 기사가 나간 직후 또 한 번의 뜻밖의 만남이 찾아왔다.
아들은 아빠를 위해 미리 종친회장님과의 카카오톡 연결을 만들어 두었다. 나는 인사와 함께 기사 링크를 보내 드렸고, 덕분에 종친회장님과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곧이어 “반갑습니다”라는 따뜻한 인사를 담은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어 대종회 사무총장을 통해 우리 가계도를 확인해 어느 파인 지 알려주시겠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또 “할아버지 함자를 기억하시면 추가로 알려달라”는 부탁도 함께 있었다. 흐릿한 겨울 하늘 아래에서 받은 이런 소식들은 마음을 한없이 따스하게 했다.
사실 회장님과 대화를 나누기 전, 나는 이미 아들이 전해준 사무총장님의 명함을 보고 먼저 사무총장님과 인사를 주고받은 상태이다. 사무총장님 역시 ‘할아버지 함자’를 물어오셨다. 설명인즉슨, 형제들이 공유하는 돌림자(항렬자)를 기준으로 윗대의 함자를 확인해야 어느 파의 몇 대손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형제들의 돌림자는 ‘교(敎)’자였고,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함자도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할아버지의 정확한 한자 함자’는 우리 형제 모두도 모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할아버지 함자가 필요한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모르고 살아온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평생 누구도 나에게 할아버지 함자를 불어보고나 필요로 한 적도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생전에 계시면 ‘함(銜)’자를 쓰고, 돌아가신 분은 ‘휘(諱)’자로 표기한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독자들이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자’로 적었다.”
사무총장님은 “아버지의 제적등본을 떼보면 할아버지의 함자와 생년월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조언해 주셨다.
잠시 후 회장님께서 메시지를 다시 보내오셨다.
“윗대 조상 함자를 알아야 찾을 수 있겠네요. 그래도 어느 파이든 간에, 우리는 모두 중시조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의 자손인 것은 확실합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카톡으로 보내온 내용을 읽는 순간, 마치 가족을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함자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우리는 같은 한 뿌리에서 이어져 내려온 자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 주는 말이었다. 이번 두 편의 글이 대종친회 홈페이지에도 게시되었다고 한다. 종친 수가 전국에 42.5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잠시라도 누군가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떠올려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마 브런치 스토리 안에도 같은 종친이 있을지 모른다.
60세가 된 지금, 뒤늦게 뿌리의 깊이를 깨달아가고 있다. 이제는 할아버지 함자를 찾기 위해 제적등본을 펼쳐 보려 한다.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 30편을 이어온 [오늘, 이곳 캐나다에서] 연재 글을 캐나다의 비 내리는 창가에서 마무리하고 있다. 연재를 해온 시간들은 마치 내 삶의 또 다른 흐름을 천천히 정리해 온 과정처럼 느껴진다. 비가 내려도 길은 계속 이어지듯,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핏줄이라는 인연도 마음속에서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법이다. 이제는 할아버지 함자를 찾아가는 일처럼, 남은 삶도 하나씩 정리하며 조용히 걸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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