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과 노환으로 힘들어하시는 어머니를 누님의 권유로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겨 드렸다. 요양원은 누님 댁에서 도보로 3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어느 정도 걱정하고 위로했던 부분을 덜 수가 있었다.
요양원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니의 팔다리가 모진 풍파에 깎여 내린 화석과 비슷한 모양이다. 다리에는 살집이 거의 없고 뼈만 남아 있는 듯한 야윈 다리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새 다리 모양과 흡사하게 닮아 있으셨다.
2년 전 여름은 지독하게 무덥고 지루했던 시간과 사투를 벌여왔다.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의 문턱에 들어설 무렵 나는 한국을 떠나왔다.
어머니와의 작별인사는 마음이 착잡하고도 무거웠다. 왠지, 어머니 생전에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은 예감을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어머니 나이 37세가 되던 해 산통의 진통 끝에 막내아들인 나를 세상 밖으로 어렵게 내 보내주셨다. 어머니는 올해 96세의 고령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살아가고 계신다.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먼 미래의 욕심까지 움켜쥐고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에게도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자식의 확신이 있었다면 헤어짐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고 살아야 삶에 보약이 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움만은 유난히 망각의 세월없이 매 순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나는 다음날이면 머나먼 땅 캐나다로 떠난다. 떠나는 날 하루만이라도 철저히 망각하고 싶었다. 그립다 하여 이전처럼 단숨에 쉽게 달려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닌 이유를 아는 까닭이다. 발걸음의 무게감은 마음의 무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분명 둘 다 나의 몸과 마음에 무거워진 무게이다.
"어머니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 짧은 작별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요양원 출입문을 빠져나왔다. 날씨가 지금 나의 마음을 닮아있다. 금방이라도 울음 섞인 비가 뿌려될 듯 하늘은 긴장된 슬픈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철역을 향하는 걸음 내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몸 건강히 잘살아라"하시던 어머니의 배웅의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 될 것 같은 마음에 걷는 걸음걸이마다 무기력 해오기 시작한다. 들고 있던 우산이 어느새 흩어진 몸의 균형을 지탱해주고 서 있었다. 회색빛 도심은 하나둘 불이 켜져 가고 무거워진 터벅 걸음은 이미 전철 플랫폼 중앙에 멈추어 서 있었다.
어머니와 이별했던 시간이 벌써 소절 없이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떠나올 때 자식이 그토록 건강을 우려했던 상황과는 달리 아직까지 어머니의 건강에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요양원에서 잘 지내고 계신다는 소식을 누님을 통해 종종 전해 듣는다.
"어머니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뵐 수 있겠지요!" 만날 때까지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 나의 독백은 생각만으로도 마음에 평온함이 다가선다. 의식 없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쳐 두 손을 모아 본다. 하느님 참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