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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Jul 28. 2021

아빠! 수염 길러서 바람도 못 피우겠어요.

중년의 수염은 유죄일까? 무제일까?

모처럼 휴가철을 이용하여 이 달 말까지만 수염을 길러 보기로 했다. 과거에는 용모와 복장 상태가 직장생활에서 자유스럽지 못했기에 언젠가 직장을 그만두고 수염 한번 길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품어 왔었다. 사실 수염을 하루만 안 깎아도 덥수룩해 보여 아침마다 수염을 깎는 일은 여성이 외출할 때 화장하는 것과 같은 번거로움과 수고가 있다.


수염은 다른 사람에 비해 1주가량 더 빠르게 자라나느낌이 있다. 남자에게는 수염만을 길러서는 멋이 없다. 어느 정도 볼 옆으로 야성미 넘치는 구레나룻이 있어야 남성의 멋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사람마다 성향에 따라 전혀 아닐 수도 있다.


 아들은 며칠 동안 수염을 기르다가 이내 포기한 눈치이다. 생각과는 달리 구레나룻 부분의 약하여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번번이 실망한 기색이다. 그 후로 수염을 기르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작은 아들도  동안을 수염을 깍지 않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작은 아들도 전반적인 수염 부분의 털이 약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다시 이전의 상태로 복귀를 했다. 두  아들젊었을 때 내 모습을 닮았다. 젊었을 때에는 며칠에 한번 면도를 해도 될 정도로 수염이 풍성하지 않았다. 구레나룻 또한 구레나룻이라고 보기엔 조금은 무리 일정도로 얼굴에 수염이 많지 않았었다. 수염의 진화가 남들보다 좀 늦은 탓이었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매일같이 수염과 구레나룻을 다듬지 않으면 지저분한 할 정도의 용모로 변신해갔다.

수염을 두 주 정도만이라도 길러보고 싶었다. 수염을 기르기 전과 후의 모습도 사실 궁금했다. 또한 아들들이 수염 기르다가 번번이 실망감으로 포기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아빠처럼 풍성한 모습을 가진 수염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일종의 아들을 위한 롤 모델을 자처하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크다.


막상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보니 예전 같이 검은색 수염이 아니었다. 머리는 물론이지만 수염까지도 어느새 반백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머리를 염색하면서 수염도 같이 염색해 보았지만 염색약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내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다 늙은 할아버지와 사는 것 같다고 본래 말끔한 상태의 수염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이달 말일까지만 길러보고 수염을 정리하겠다는 말에  이상 수염에 관해 함구무언이다.


아침에 세면을 하고 난 후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매 순간 수염을 깎고 싶은 충동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 수염을 길러보지 못하좀처럼 또다시 길러볼 일이 없을듯하여 이왕 시작한 일 이달 말일까지 만이라도 버티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독립을 한 작은 아들이 휴일이라 모처럼 집을 방문했다. 현관을 들어서다 말고 뜻밖의 수염을 기른 아빠의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빠 수염 기르시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수염을 길러요, "

아들의 눈에도 수염 기른 아빠의 모습이 어색하고 왠지 부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빠는 수염을 길렀으니 바람피울 일도 없겠네 ㅋㅋ"

아들의 농담 수위가 한층 더 높아졌다. 어디 가도 할아버지로 보이는데 어느 여자가 할아버지 같아 보이는 아빠를 멋있다고 쳐다나 보겠냐는 식의 신랄한 표현이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굳이 할아버지 모습으로 비치어진 수염을 계속해서 길러야 할 이유가 사실상 없었다.


아들이 돌아가는 순간을 틈타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면도기로는 이미 무성할 정도로 자라난 수염을 면도기로 감당해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발 기계를 꺼내어 10일가량 길렀던 수염을 머리 깎아 내듯이 깎아내렸다. 수염을 자르고 나면 빈자리가 허전할 텐데 아침에 개운하게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수염을 자른 모습을 보고 아내의 첫마디는 짧고 명확했다

"당신 수염 자르고 나니 한층 더 젊어 보이고 좋네요"  

결국엔 예정된 말일까지의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고 수염은 원상태로 복귀되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다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슬그머니 거울 앞에 다가섰다. 말끔해진 모습이 거울 앞에서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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