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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Nov 23. 2021

캐나다 첫 직장에서 사표를 냈다

해외에서 다시 찾아가는 직장생활

캐나다에 이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었다. 내 나이 50살을 훌쩍 넘긴 시기이다. 이민사회 1세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은 한인사회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음식 관련 업종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에게 캐네디언 회사 진입은 로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캐나다 직장의 시작은 기대했던 만큼의 환경 조건은 사실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국 작장에서 연계된 경험을 필요로 할 정도로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장도 결코 아니다. 이민 2.3세대도 아닌 상황에서 전문직종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단순 노동력을 요구하는 생산 종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될만한 이민자 직업의 현주소이다.


캐나다 현지법인 회사는 소규모 영세 직장과 기본적인 조건만 비교해 보더라도 현저한 차이를 가지고 다. 그중 하나가 복지 혜택 조건이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언어의 장벽이 큰 문제이다. 물론 분야에 따라 차이를 둘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면 캐네디언 회사 진입은 그다지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특히 직장을 가지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내려놓아야 한다. 과거의 행적은 이민자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는 지속 가능한 일 자리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나에게도 이전에는 육체노동이 아닌 감정 노동이 전부였다. 물론 임원이라는 직위를 경험한 과거 행적까지도 잊어버리는 것이 자신에게는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직장 첫 출근은 누구나 비슷한 소감을 가지고 있겠지만 특별히 외국에서의 첫 직장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기만 했다. 솔직히 소감이기 전에 두려움이 제일 컸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일단 인종이 다른 사람부터가 생소했고 직장 문화 자체가 한국 기업과 아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단순한 과정만 보더라도 생소한 느낌의 이유 중 하나가 문화적인 정서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우선 대부분의 직장이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점심 문화부터가 달랐다. 또한 특별하게 회식이나 입사 환영식이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회식이 있더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간단한 피자 정도가 전부였다.


취업한 회사는 빌딩과 주택에 사용되는 windows(창문과 ) 생산하는 업체이다. 주문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량 미국으로 수출하는 규모 있는 회사이다. 생산 공정 라인은 숙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정해진 포지션 없이 잡다한 생산 지원이 전부였다. 일종의 시키는 데로 하면 되는 허드렛일 정도의 정체성 없는 일이라는 정의가 딱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회사 분위기에 익숙하기엔 다소의 긴 시간이 필요로 했다. 우선 제일 중요한 언어에 대한 한계성 도전도 있겠지만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고 위안을 받아갈 만한 한국인 동료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회사 적응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 회사에는 주로 필리핀계와 캐네디언이 대분이다. 필리핀계 이점은 언어이다. 자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혼용해 쓰고 있어 캐네디언 회사 진입이 매우 용이했다.


회사생활 몇 개월 동안은 정신없이 긴장된 모습으로 많은 시간을 떠나보낸 것 같다. 아침 일찍 출근을 위해 생소한 고소도로 위를 달려가야 했고 합창 시절을 마지막으로 잊고 있었던 도시락을 다시 싸야 하는 일이 생겼다. 도시락 반찬은 가능하면 김치 따위 자극성 음식은 피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생겨났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이 차츰 비켜 지나면서 회사 적응에 약이 되어 주었다. 기존 단순한 업무에서 탈피해 나름 어느 정도는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포지션으로 이동해 나갔다. 하지만 늘 영어가 걸림돌이 되어갈 때가 여지없이 생겨났다. 때로는 귀 멀고 눈먼 형태의 없는 무지의 행동으로 적응의 시기를 버티어 왔는지도 모른다.


거의 일 년 정도의 회사생활에 접어들 시기 자재검수를 담당하는 새로운 팀으로 옮겨갔다. 기존에 했던 일이 다소 거칠었다면 자재 검사팀 업무는 섬세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정도로 여성미에 가까운 업무였다.

 

자재 검사팀 전원이 여성이었다. 일종의 금녀의 집을 비집고 들어간 침범자 청일점 된 것이다. 팀장은 업무 첫날부터 특별한 업무 지시 상황도 없이 일을 자율에 맡겼다. 하지만 업무가 종료될 때쯤이면 일에 대한 평가로 연일 꼬투리 잡기 일쑤였다. 갈수록 수위는 높아지고 책임까지 전가하려 했다. 이유는 자신들의 캐네디언 영역인 성지를 침범한 대가에 대한 일종의 보복성이었다.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한 느낌이다. 결국 한계를 버티어 낼  용기가 더는 없었다. 결국엔 계획도 없이 사표를 내고 말았다.


회사에 사표를 낸다는 감정이 왠지 인생의 좌절 실패 같은 느낌이었다. 자진 사퇴로 회사를 퇴직할 경우 실직기간 동안 정부에서 지급되는 실업수당 수급 신청자격이 제외된다. 규정 자체를 무시하고 사직 이유에 대한 내용을 담아 정부 담당 관청 글을 보냈다. 불합리한 인종차별로 인해 사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정황을 리포트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정부 관청에서 실업수당 수급이 인정된다는 내용을 가지고 우편으로 답변서를 회신해 왔다.


캐나다는 별도의 이민을 정책에 관한 모든 업무를 관장하는 이민국이라는 부처가  따로 신설되어 있다. 물론 최고 책임자는 장관이다. 이민국뿐만 아니라 모든 정부 부처 이민자가 많은 다민족 국가라는 점을 인식하고 인종차별에 대한 처벌을 엄격한 나라이다. 법은 정해진 테두리에 안에서 원칙을 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원칙을 벗어나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판단이 되면 법은 원칙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는 캐나다 법의 취지에 관해 이전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 메일로 질의를 하게 되었다. 결국엔 회신의 답은 긍정의 결과를 채워왔다.


사표로 인한 그동안의 기록들을 통해 이민자 삶을 살아내기 위해  좀 더 강인해 지려 하는 스스로의 마음 다짐 힘을 보태어 주었다. 또한 다 인종 틈 안에서 강해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자연스럽게 체험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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