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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엠디 Sep 19. 2024

퇴사한 선배의 뒷모습

퇴사하고나서야 알게 되는 사실들

현재 시각은 9월19일 목요일 오전 6시43분, 미국에서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미국에서 esl 코스 등의 어학코스가 일정이 맞지 않아, 영어공부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말 안 들리고,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그러다가 한인카페에서 영어원서읽기 독서모임에 결원에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운 좋게 추가인원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독서 벼락치기를 하러 새벽에 일어난 김에 노트북을 켜고 이 글을 씁니다.


우리 독자 분들은 어떤 저녁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저녁은 드셨는지, 연휴가 끝난 첫 날이라 숨가쁘고 힘드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특히 직장인 분들은 밀려있는 업무가 많으셨겠지요. 어제 글에 이어 "퇴사"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잊기 전에 좀 더 생생히 브런치에 남겨보고자 합니다. 


정말 좋아하던 직속 상무님께서 내가 퇴사한 지 석 달 쯤 뒤에 퇴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가 신입 사원일 때 그 분은 차장님, 제가 3년차일 때 그 분은 저의 팀장님, 그리고 제가 퇴사할 때에는 이미 한 사업부를 꾸려나가시는 상무님이셨습니다. 한 회사에서 20여년 간 이상 몸 담으신 공채 출신 이셨지요. 대기업 임원으로 탄탄한 커리어패쓰에 뛰어난 능력, 가정에서는 워킹맘으로 스타일도 늘 멋지시고 쿨하던 그녀는 제가 닮고싶기도 했던 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퇴사할 때 많이 안타까워해주시고 만류해주시기도 하셨던 분이지요. 


***

그런 감정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결재를 받아야하는 직책자이기에 늘 어렵고, 또 좋아하면서도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그래서 따지고 보면 사적으로 밥을 먹는다거나, 메세지를 주고받는다거나 하는 사이는 아닌-

역설적으로 어떤 선배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 만큼 대하기 어려운 양가감정 말이지요.


저 선배랑 친해지고 싶고 밥 먹고 싶다. 그러나 막상 밥 먹을 때에는 긴장해서 제대로 말을 못했었습니다. 



상무님의 퇴사 송별회에 저도 부랴부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용기내어 제가 미국가기 전에 따로 둘이 뵙자고 말씀을 드려, 출국 일주일 전 처음으로 회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근사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게 먹었던 그 날의 떡볶이.


 퇴사하시고 나셔서 얼굴이 왠지 더 밝아지신 듯한 선배는, 그 날도 어김없이 쿨하고 멋진 운동복 차림으로 저를 만나러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몇 시간 동안 깊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저도 하도 말을 많이해서,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지, 선배가 지루하시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회사 생활 끝에 겪었던 매너리즘과 힘듦에 대해서도 솔직히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 키오스크, 우리나라의 농업 자립성, ai 등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스운 말이지만 상무님도 이렇게 힘드셨을 지 몰랐어요.

 그 날의 모임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위와 같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늘 대단하고 완벽해보였던 선배도, 실은 회사생활하면서 다양한 챌린지 속에서 고군분투 해왔겠지요. 와, 저 선배님은 포커페이스도 잘 되시고 늘 평정심을 잘 유지하시는 온화한 분이야-라는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시간동안 노력하고 또 혼자 힘드신 부분도 많으셨을까요? 역설적으로 퇴사하고나서야 선배의 인간적인 뒷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퇴사하면서 많은 편지와 선물, 꽃을 받았다. 내가 이런 걸 받을 자격이 있나 감사했다.


퇴사를 하게 되면 일반적인 경우는 - 아주 최악의 경우로 치달았던 퇴사가 아닌 이상에야

업무적으로 부딪혔던 사람, 또는 감정적으로 싫었던 사람들과도 웃으면서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퇴사를 앞두고 나면 거의 모든 퇴사자의 마음이 같을 거에요. 퇴사자의 마지막 소원은 하나입니다.

 "웃으면서 잘 마무리 하는 것, 내 인생에서 한 페이지를 잘 닫는 것. 결자해지"



 넷플릭스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있는 <요리 계급 전쟁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각 분야의 요리사들이 나와 겨루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데, 요리의 대가들이 나오면 장인, 명장이라고 모두가 리스펙을 해주지요. 거기서 의문이 들더라고요. 직장생활에도 장인, 명인이 있습니다. 누가 장인이냐고요? 오래 버틴 사람이 장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회사만 오래 다녔지. 다른 건 해본 적도 없고 잘 못해. 그리고 다른 거 해볼 생각도 없고..와 같이 얘기하는 수많은 선배,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렇게 말해주지 못한 게 좀 후회스럽습니다. "당신은 꼰대가 아니라 직장생활의 장인입니다" 꼰대라는 단어가 대유행을 하기 시작한 뒤, "성장"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키워드로 떠오른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그러나 성장만큼 "안정, 꾸준함"이라는 키워드도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한 회사에서 오래 몸 담는 건 고인물, 꼰대이고 다양한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또는 부업을 잘하는 소위 n잡러가 되는 것이 멋있고 트렌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많은 거 같아요. 물론 mz세대인 저도 솔직히 어떨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퇴사를 해보고나서 느낀 점은, 직장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며 결코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그 사람의 성과나 업무 능력과도 무관할 수 있으며, 직장생활을 꾸준히 지속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버티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직장인 뿐 아니라 묵묵히 한 자리를 꾸준히 지키는 사람은 어떤 직업이든 직업을 막론하고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니까요.

*

(이 글을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걸어가고 싶은 그리고 걸어갈 예정인 수많은 독자님들 

그리고 선배님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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