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도 회사 어플을 지우지 못하는 이유.
퇴사하고 미국 가서 너무 좋겠다, 거기에다가 남편이 회사 지원을 받아서 가는 거라니..
그동안 고생 많았어! 맘껏 즐겨! 나는 네가 부럽다. 또는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니, 현실은 전쟁이야, 곧 후회할 거야..
퇴사를 하면서 숱하게 들어왔던 말입니다. 입사 9년 차, 저는 매너리즘으로 괴로워하며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도 쳤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남편의 일이 아니었더라면 퇴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족 사유에 따른 해외이전 퇴사" 이것이 저의 퇴사 사유입니다.
제가 sns에 올리는 미국의 일상은 푸르른 하늘과 맛있는 음식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여유로운 일상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sns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라는 말처럼, 좋은 면만 사람들에게는 보이니까요. 9년간 엠디로 일을 하며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순간도 참 많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회사 어플을 지우지 못했어요. 기획해 놓고 간 상품이 과연 지금 잘 팔리고 있을까..? 상품평을 읽어보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편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퇴사에도 퇴사통이 뒤따릅니다. 퇴사만 하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이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면 꼭 이 얘기를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던지 퇴사를 후회하는 순간이 꼭 한 번은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꺼이 그 후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퇴사통인가 보다,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말이지요.
이직에 의한 퇴사라면 아무리 다음 회사가 더 좋은 회사이더라도 적응하면서 필연적으로 몇 달간은 낯선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든 순간이 올 것입니다. (무조건) 성장을 위해 다른 직업으로의 이전이든 혹은 저처럼 가족이나 일신 상의 사유이든 퇴사라는 것의 뒤에는 분명히 후회하는 순간이 오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왜냐고요? 관성을 깨는 건 그만큼 인간에게 괴롭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길래 왜 그만뒀어, 요즘 경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회사는 절대 그만두면 안 되지, 회사 다니면서 고민해 봐 등등... 참 희한합니다. 결혼 얘기, 아이 얘기는 그 사람의 프라이버 시니까 불문율처럼 꺼내서는 안 되는 이야기 주제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데 퇴사나 입사와 같이 커리어 부분만큼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첨언을 해줍니다. 이해합니다. 생계에 직결된 일, 먹고사는 일이니까요. 아끼는 만큼 그 사람이 실패를 겪지 않도록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그렇지만 결국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본인 자신입니다. 퇴사에 대한 고민은 빠르게 마칠수록 유리합니다. 애초에 퇴사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오래 간직해 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갉아먹는 생각이거든요.
퇴사해야만 한다 -> 퇴사 이후에 대해 준비해 본다. 퇴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 퇴사에 대한 생각을 아예 접고 현실에 빠르게 적응한다.
혹시 끝맺음을 해야 하는 시기임을 알면서도 내가 망설이느라 시간을 끌고 있지는 않는지, 반대로 퇴사가 불가한 상황이라면 빠르게 현실에 순응하고 긍정적으로 적응을 해야 하는데 인생을 끝없이 불행하게만 살고 있지는 않는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은 퇴사를 해본 뒤 저도 공허함과 우울함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경력단절 되지 않고 재취업할 수 있을까? 또는 9년간 한 산업에만 몸을 담았는데 과연 나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회사만 열심히 성실히 다녔는데 생각보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구나. 와 같은 무력감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퇴사 뒤에 찾아오는 후회는 퇴사통입니다.
차선을 바꾸는 0.1초의 찰나는 늘 두렵고 무섭습니다. 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도 깜빡이를 켜고 그 순간만큼은 온 정신을 집중해 백미러를 살피지요. 초보운전자가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도 차선변경이니까요. 처음엔 무섭고, 어렵고, 더러는 접촉사고도 날 수 있지만 이윽고 베테랑 운전자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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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무엇이든 퇴사를 결정하고 퇴직원을 접수한 순간, 당신은 인생의 깜빡이를 켠 것입니다. 퇴사 뒤에 찾아오는 후회를 자랑스럽게 여겨주세요. 퇴사를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입니다. 그 결정을 했던 당시의 당신을 존중해 주세요. 결코 길지 않은 인생에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제 인생의 다음 직업을 찾고 있는 요즘, 저는 두려움과 동시에 설레고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