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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엠디 Sep 24. 2024

미국 2주 차, 시간에는 가격표가 붙는다

가계부 쓰기를 포기했다. 

미국시간 9.23 월요일 오후 8시 55분. 왠지 무기력하고 많이 피곤한 오후입니다.

오늘은 브런치를 써보고 일찍 잠에 들고자 합니다. 




오늘로써 미국에 입국한 지 딱 2주 차입니다. 시차적응은 완벽히 되었고, 이제 슬슬 매일의 루틴을 만들어야 할 시기이지요. 이 시기에 생활 루틴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다면 남은 2년의 시간이 자칫 허송세월일 거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토익 900이 넘고 나름 수능 볼 때까지는 영어에 자신이 있던 것 같은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영어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회화는 어렵고, 원어민이 하는 말은 잘 들리지도 않고요. 저는 그래서 매일 단 10분이라도 챗 gpt와 스피킹 어플을 이용해서 영어회화를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무지방 바닐라라테를 시키고 싶어서 주문을 기다리는데, 그 짧은 시간도 너무 긴장되더라고요. 


I'll get a grande iced vanilla latte with non-fat milk.


몇 번이나 문법적으로 맞을까? 되뇌면서 더듬더듬 주문을 했습니다. 결과는? 


따뜻한 바닐라라테 

보이시나요. 따뜻한 무지방 바닐라라테가 나왔습니다. 한국이었다면 너무나 자신 있게 잘못 나왔어요!!라고 했겠지만, 혹시 내 발음에서 iced..라는 게 웅얼웅얼 안 들렸나? 싶으며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그래서 33도가 넘는 작렬하는 태양볕 아래에서 졸지에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막상 한 모금 마시니, 달콤하면서도 뜨끈하게 속을 데워주는 한 여름의 뜨거운 라테가 나쁘진 않습니다.



 영어 공부해야 하는데, 운전 연습해야 하는데, 문득 조바심이 들지만 오늘은 너무 졸리니까 초저녁부터 잠을 자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브런치에 퇴사 후의 소감이라던지 앞으로의 계획이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써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뒹구는 영수증들을 정리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다 무슨 배부른 소리냐. 성장도 커리어도 자기 계발도, 결국은 생존 앞에서는 배부른 소리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겼다고 합니다. 제가 감명 깊게 읽었던 어떤 미래학자는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퇴근 후에 다음 삶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 당신은 직업이 있더라도 백수와 다름없다고요. (저는 이미 백수이지만요) 다들 앞으로의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참 궁금합니다. 네, 가계부를 정리하다가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돈 때문이 맞습니다. 미국생활은 - 특히 초기 정착기인 지금의 미국 생활이라는 것은 무서운 속도로 통장 잔고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와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숙제, 아니 어쩌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근본적인 고민거리 아닐까요. 어떻게 생존하느냐.

***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에도 가격표가 붙는다는 것을 퇴사하고 깨달았습니다. 월급이 당연하게 나오다 보니, 시간당의 가치를 어느 순간 까먹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오늘도 퇴사하지 않았다면 벌었을 금액으로 환산해 본다면 기회비용이 엄청난 거겠지요. 퇴사자의 시간은 유독 더 빠르게 그리고 비싸게 흐릅니다.

마트에서 사든 도넛가게에서 사든 미국 도넛은 정말 다 너무 맛있다. 내 췌장이 버텨줄 수 있을까 


 글을 쓰는 것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오늘은 집에서 조금이라도 생산성 있는 글을 써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습니다. 원래 꿈은 작가이기도 했었고요. 회사를 다닐 때에는 시간만 많으면 그 어떤 멋진 글도 뚝딱 써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건 결국 핑계였던 겁니다.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움직이기 전까지는 결코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오늘 4시간 넘게 책상에 앉아서 재밌는 소재가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플롯도 떠오르질 않는 거예요. 애꿎게 도넛만 2개, 커피만 2 잔 먹었습니다. 머리를 쓴다고 생각하니까 간식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지요. 쓰다가 엎고, 쓰다가 엎고. 창작이라는 게 무섭습니다. 앉아서 단 한 시간만 머리를 써도 머리가 쥐가 날 것 같고요. 그래서 오늘은 시놉시스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일단은 잠을 자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내일은 저의 머리가 열일을 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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