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이들, 엘리사벳 되기
두 눈 가득 사랑을 담고 진심을 담아서 전하는 말.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말없이 서로 바라 보고 0.1초의 쉼표,
늘 마음에 두는 사람들.
잘 살기를, 잘 살아주기만을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두에겐.
그들을 난 엘리사벳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성서를 많이 읽진 않았지만, 어릴 적 미사 중에 복음과 독서로 들었던 이야기들보다
어쩌다 하던 묵주기도 속 등장한 마리아와 엘리사벳 이야기가 와닿았다.
어릴 땐 몰랐지만..
모든 엄마들의 마음을 울리는 서사가 아닐까?
세간의 비난과 수군거림을 몇 번이나 넘겨야 했을까. 그러기 위해 얼마나 깊고 긴 기도를 이어가야 했을까.
마리아가 예수를 처녀인 몸으로 잉태했을 때에 찾아간 그녀.
세례자 요한의 예비맘 엘리사벳.
폐경이 한참 지났을 나이에 임신한 그녀.
마리아 역시 결혼을 앞둔 처녀인데 스스로도 얼마나 놀랐을까.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친척 중에 같은 경험을 한 엘리사벳이 있었음에.
엘리사벳의 출산 후 노동을 돕고 와서 마리아는 심기일전했다.
나와 같은 삶과 그 여정을 가게 될 동지를 돕는 경험은
얼마나 특별하고 뜻깊었을까.
성서에는 여성 서사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역사책처럼 성서도 남성 화자가 남긴 이야기가 다 아닐까?
나는 이 둘이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육아 동지로써 큰 힘을 얻었으리라 감히 상상해 본다.
그 힘으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내게는 엘리사벳들이 있다.
문득 안부가 궁금해지고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잘 지내는지 궁금한 이들.
내게도 엘리사벳이 있다. 혼자만 알고픈 그런 귀한 인연들.
힘들 때면 찾게 되고 서로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고 웃어주는 이들.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이 글을 읽지 않으실 거라 믿고 한 번 시작해 본다.
첫 번째 엘리사벳 이야기
대학 동기가 중국의 친황다오에 남편이 일하고 있었다. 때마침 나도 남편을 따라 베이징의 한인타운 왕징에서 살게 되었다.
대학 룸메이트였던 그녀는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왔다.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려 고민 중이었는데, 톈진과 베이징 중에서 내가 있는 베이징을 선택한 것이다.
마음 잘 맞는 친구와 육아일상을 나누는 것은 큰 행운이다. 불금은 찐 불금, 아이들도 친자매처럼.
중국에서 남편 출장일 때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것은 우황청심환보다 좋았다. 곁가지로 새긴 해도, 그곳에서 우황청심환을 예닐 곱 번 구매했다. 아빠가 좋아하시기도 했고 나도 내 몸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 번 엘리사벳 줄여서 일리는 맹모삼천지교 신념으로 바삐 살고 있다. 몇 년 전에도 남편이 해외로 발령받았다.
내년에는 첫째 대입을 마무리하고 이 동네로 올 텐데 그땐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두 번째 엘리사벳
내 엘리사벳들은 신기하게도 우리 해피가 어릴 적 만난 인연들이다.
그 친구 앞집에 살던 한 언니는 두 번째 엘리사벳. 줄이면 둘리. 같은 단지에서 산책하다가 우리 해피와 동갑인 둘째가 있었기 때문에 친해졌고.
해피가 원장님 등에서 미끄럼을 타길래 그 많던 선택지 중에 고른 유치원에 그 언니 둘째도 오면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새로운 육아동지.
우린 계속 연락을 이어갔고 함께 코로나를 겪으며 여기저기 과학관과 워터파크를 다니면서 주말이나 휴일에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우연히 해피가 힘든 시간을 겪을 때 둘리 언니 첫째도 고3에 자퇴를 결정햐 시기와 겹쳤다. 그렇게 아픔을 나누고 서로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고 지금 멀리 이사를 왔지만 늘 함께다.
세 번째 엘리사벳은 아껴두고 싶다
소중한 존재로 이곳에 세세히 쓰기보다 내 일기장에 두고 싶다. 늘 건강하고 항상 무탈하기를 바랄 따름. 한 번 벚꽃마을에 들러주었는데 다시 놀러 오기엔 좀 바빠졌다. 당근으로 구한 알바로 아기돌보미를 시작했고 요즈음들어 손목이 시리다는데..
엘리사벳 되기
엘리사벳들에게 나도 엘리사벳 혹은 그 이상이 되어주었던가?
나도 위로와 위안을 자연스레 나눌 힘,
그런 힘이 우러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