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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Feb 16. 2024

프라이버시_지켜주기

어려도 이젠 독립 | 내딸과 집단따돌림극복기 열셋

난 너무 궁금한 걸.

네가 무슨 말과 생각으로 살아가는지가 궁금했어.

몇 년 전만 해도 네 모든 일상을 내게 다 나눠주던 너였어서 그래.

그러던 네가 언제부터였던가 내 앞에서 아끼던 말과 생각들 다 어디로 갔을까.

난 그저 다 알고 돕고 싶었어. 어릴 적 일인다역을 소화해 가며 거울 앞에서 잘도 놀던 너잖아. 네 외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입이 마르도록 그랬던 널 떠올려. 일찍 말을 배우고 생각을 잘 표현하던 너를 모두 기억하고 있어. 그렇게 네 머릿속을 꽉 채운 많은 생각이 다 어디에 표현되고 있을까.

알지 왜 모르겠니, 개인적이고 내밀한 속내는 지켜주어야 한다는 걸. 친구든 가족이든 지킬 건 지켜야지. 난 그냥 네가 상처를 덜 받았음 하는 마음일 뿐이야. 네 휴대폰이 있는 걸 알지만 더 이상 보지 않아.

지켜줄게

그땐 그랬어, 그래야 널 괴롭힌 애들의 모든 기록을 캡처하고 저장. 필요했지. 너도 다시 보기 버거운 상태지. 한 10일 즈음 지나서야 당시 사건의 전말을 난 알게 되었고. 네가 여러 애들에게 학폭 신고하지 않겠다던 말을 지키려고 생각해 낸 묘안으로 그애는 그애 반 담임 샘에게 별도로 지도를 받았지.


그렇다고 별반 달라지는 것도 없었어. 네 증세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고 결국 입원. 네 아빠와 학폭신고를 결정하기까지. 아빠는 자신이 회사일을 핑계로 더 일찍,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했음을 뼛속깊이 후회했지.

네가 저학년 때 생긴 일들은 아빠가 다 앞장서서 해결한 거 너도 알지?


복도에서 널 거칠게 밀어서 무릎 밑에 난 멍. 그 남자애 집 앞에서 그 부모님께 보이고 사과받고. 네가 2학년인가 3학년 땐가 답문자로 대차게 욕을 날린 여자애는 네 아빠가 제안한 대로 엄마가 그 여자애 엄마 포함, 엮인 다른 두 엄마까지 만났어.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널 둘러싼 일들은 옳고 그름이 명확했다. 해결법도.

그 여자애 엄만 곧 죽어도 지 딸이 그랬을 리 없다 딱 잡아떼더라. 자기 딸 옆에 한 살 많은 언니가 그랬을 거라며. 그 폰도 딴 애거지 않냐며. 폰 주인인 애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야.


길어지는 대화 끝에 난 말했지. 어찌 됐든 원인을 제공한 내딸에게도 잘못이 있고 그래서 이 자리를 만든 거다. 네 아이들 모두 그런 욕에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노출된 것이 문제이니 누가 했냐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다 접고 우리 애들 살 환경을 공유하는 처지이니 돌아가서는 애들 교육 잘 시키기로.



근데 참 우습다. 이번에 그애 엄마도 그런 말을 했다나. 남을 힘들게 만들고도 억울해하고 남탓하는 건 남에게 해를 주는 그네들이 하나같자기변명이다. '억울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지 않냐'. 그러면, 걔네들 단체로 싸그리로 다 신고했어야 한다는 논리. 역시나 그애에 그부모다 싶다.

방아쇠를 당긴 게 그애이기 때문에 그애만 신고하기로 한건 네가 내린 결정이었고. 우리도 동의했다. 지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상하고 기묘하다.

피해를 입고도 내가 이러저러한 피해를 입었다고 게시판이나 댓글 등으로 공개적으로 알리그것을 통해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당초 가해자가 다시 서류상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억지 피해자 때문에 멀쩡한 아이가 억울한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고.


근데 제발 그러길 바라는데, 길게 봐서 말이야. 삶은 공평하대. 여기에 함정은 길게 본다는 거다. 이번 세대가 아니면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 남에게 피해만 주는 그애들은 똑같이 아니 더더 크게 깨달을 일이 생길 거다. 그리고 그건 네가 할 일이 아니다.


지금은 네가 많이 억울하지. 나도 그래. 열받지. 사람이니까.


나쁜 맘 처먹은 **들은 결국 다리 뻗고 못 잔다. 미안 딸아 표현이 많이 저속했지. 사실 더 할 수도 하고도 싶지만 네 눈을 위해서 수위 조절 좀 했어.




사실 다 있어. 그 캡처들, 엄마가 지드라이브에 특별히 폴더에 다 넣어놨지. 네이버 어쩌고 박스에 백업도 해놨을걸. 심지어 폴더별 분류도 했다.

주동자인 그애 위주의 갖가지 톡, 같이 소외시키고 프사로 저격한 데다 애스크에 쓸데없는 댓글도 달던 애들이 다시 하루 만에 얼굴을 바꿔서 거짓사과까지 하고도 퇴원 후 돌아온 네게 끝날까지 널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던 걔같은 애들.

네게 보내 톡과 프메, 한결같이 복붙처럼 보낸 짜고 친 거짓 사과문이 담긴 대화내용도.

이게 내가 해주고 싶던 말이다. 네가 내게 엄마 나 ***도 학폭 신고하면 안 돼? 그 캡처 아직 있어? 했을 때.

지금이라도 되지 왜 안돼.

네 마음이 그러길 원하면 그러자.
백번이라도 백 명이라도 난 다 찬성.


근데 말이다.
더 하고 싶던 말은 누굴 미워하는데 쓸 힘 모아서
날 널 우릴 사랑하자고.

이 말이 진심으로 여러 번 펜으로 쓴다면 겹쳐서 찐하게 전하고 싶은 내 마음이다.

우리에겐 앞으로도 햇살만큼 많은 나날이 있지.
그리고 그 시간은 사랑으로 채우자고.
네가 말했잖아. 결국, 사랑이 젤 중요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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