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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Feb 23. 2024

INFJ와 '병철이네'_딸에게 배우기

계획형 인간의 미루는 버릇들과 작심31 | 내딸 집단따돌림극복기 열넷

우리집 식탁 위 조명이 수명을 다 했다. 여기서만 4년이니 그래 너도 애썼구나 했다. 딱 하나 필요한 전구인데 인터넷에는 여러 개를 사야 해서 적당한 가격을 찾으려고 차일 피일 구매를 미뤘다가 내가 이마트에브리데이에서 사 온 날 남편은 홈플러스 마트배송으로 샀더라. 


맞아. 우린 좀 더 자주 이야기를 해야 한다.


혼자가 더 쉬웠거든. 같이 하면 기다려야되거든. 이거 어때? 저건 어때? 이것보다 저게 더 좋지 않냐, 이렇게 하다가 결국 조바심이 끼어든다. 둘 다 일을 하니, 당일배송 다음날 배송 기한이 다가오고 갑자기 둘다 회의라도 다녀오면 시간은 더 지연되고. 결국 그걸 왜 지금 말하냐 라는 의미없는 감정소모까지. 


핑계가 너무 많네. 그래도 더 자주 이야기해야 해.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그러고도 뭐가 그리 잘 통하는지. 같은 날 장보기도 여러 번이었지. 직장인의 비애인가. 월급날을 전후로 지름신이 강령한거였나 싶다.


결국 또, 어느 순간 내 일을 미루던 나, 내 게으름을 자책하고 있는 나를 자각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완벽주의 때문에 스스로 바라고 고치고 싶은 게 아직도 많다.


올해는 새해 결심 따위 만들, 적을 여유도 없었다. 그저 내딸, 네가 어서 빨리 퇴원하길 바랬던 그때였거든. 새해 직전에 입원한 네 하루 하루가 더 편히 지나길 빌 뿐... 

우리가 함께 지낸 최근은 입원과 퇴원, 또 그 반복이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어차피 일찍 일어나기, 덜 미루기 등등은 새해 결심은 늘 하는 후회였고

더 나은 내가 되려 다짐하는 순간일 뿐이었어.

 

이 정도면 새달 결심을 세우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렇게 작심삼일 열 번 하면 한 달 갈 텐데


그래 깜빡할 수도 있지, 더 잘 수도 있지.

우리 이제 좀 이래도 되겠지. 딸아. 


우린 우리에게 너무 엄격했잖냐.


그래도 내일부턴 일찍 좀 일어나자! 요즈음 우린 모두 늦잠이 늘었어.


매일 하는 미루기는 눈뜨기다. 피곤함이 지배한 아침마다 눈뜨기가 어렵다. 한때는 알람 없이도 5시 반, 6시 반이면 눈이 떠졌는데. 내 몸의 리듬을 관리하면서 아침에 눈 뜨는 게 가능했었다.


최근에 일상이 무너지기는 했지. 이사할 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왔잖아. 집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우리 모두.


결국, 아빠 혼자 지키던 우리 집에서 온수가 고장 났다.


보일러도 안 틀고 온수도 없이 매일 찬물로 씻고, 들어서면 온기 하나 없이 차가운 집에서 아빤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상 통화는 충분치 않았다.


참다못한 둘째는 '엄마, 우리 집에 가고 싶어.'

바로 다음 날 짐을 싸서 운전대를 잡았다.


우리집에 온 눈과 곰돌이


온수 고장은 핑계였고, 나도 실은 한계가 왔었단 말이다.

내 꺼 우리꺼 우리만의 시간이 가득한 우리집으로.




노래방 마이크를 주문했다. 곧바로 도착했다. 


이게 뭐라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너와 나 우리 모두. 그래, 기타 치며 노래하는 네가 참 보기 좋다. 마이크는 처음 샀던 날 보다는 덜 만지지만 기타 카포는 제 몫을 하는구나.


치료를 받는 내내 심리상담사를 꿈꾸던 네가 요새는 음악가를 꿈꾼다. 


변치 않는 건 지치지 않고 넌 늘 미래를 꿈꾼다는 거고 그걸 위해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거. 

노래 부르고 기타 치는 심리상담가든 그림그리는 환경운동가든 늘 꿈을 꾸는 네가 대견하다.


그리고 난 어제 네가 공유해 준 MBTI 테스트를 했다. 내가 직접 본 테스트는 아마도 첫 직장시절 회사에서 했던 거? 언제적이냐.


INFJ: 전략가,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며 상상력이 풍부한 유형이라네,


일할 때는 ESTJ였었다. 변치 않는 건 J. 지긋지긋한 계획형 인간. 

엄마는 툭하면 일정을 계획하려고 해, 습관적으로. 

일할 때는 물론 일정을 짜서 결과를 내야 하니까 당연한 거지만.

하루를 어떻게든 더 잘 보내려는 이 의지는 참. 축복이지만 저주일 때도 있다.

 

감기 기운이 날 지배한 이런 주간에는 그냥 퍼 자야 빨리 낫는건데 말이다. 

오늘도 너랑 무얼 할까? 어딜 갈까? 그 커피숍을 가볼까?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 74% 직관형(vs 관찰형) : 

매우 상상력이 뛰어나고 개방적이며 호기심이 많다. 

독창성을 중시하며 숨은 의미와 막연한 가능성에 집중한다.


 + 61% 사고형(vs 감정형) : 

객관성과 합리성 중시, 논리에 집중하느라 감정을 간과할 때가 많다. 

사회적 조화보다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82% 계획형(vs탐구형) : 

결단력이 높고 철저하며 계획적. 명확성, 예측가능성 중시한다.

제대로 끝내기, 체계적 계획을 세우기를 선호한다.


 + 58% 확신형(vs민감형) : 

스스로를 믿고 평정심 유지, 스트레스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걱정을 자주 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높은 자신감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사회생활을 통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I'라고 하면 놀라더라. 나를 타고난 영업할 사람이라며 원만하게 팀과 어울리는 인간으로 알지.그곳에선 난 다른 페르소나니까.


회사, 직장, 바깥에서는 어떻게든 힘을 뽑아내서 포장하고 살아. 그렇다고 그게 내가 아닌 건 아닌데, 여럿이 즐기는 시간도 좋고 흥이 나고. 

진짜 나는 혼자 지내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어쩌면 이 간극을 좀 좁혀야 하겠지.


이 테스트는 반대되는 성향은 몇 퍼센트인지도 알려주니, 더 좋더라. 


내가 성찰하기로도 자기확신이 커서 만든 문제가 있지 않나했는데, 그래도 확신형 58%에 민감형 42%면 나름 중간이잖아? 

61% 사고형이고 39% 감정형이라네... 나이가 들고 이일 저일 다 헤치우다보니 생긴 이점인가. 감정보다 논리를 중시하긴 해, 하지만 절반 넘는 정도면 합리적인 정도 아닌가? 너무 감정을 무시하진 않았나 보다. 


몇 문항 풀고 나온 답이고 오늘의 나는 다음 주의 나와 달라질 거니까 또 바뀔 수치겠지만. 

넌 INFJ야.라고 단정짓는 것보다 나를 더 여러 각도에서 보게 해 준다. 


쉬는 내가 더 진실한 나에 가까운 내 모습이겠지. 

물론 MBTI는 사회와 관계를 맺는 유형을 일반화한 것일 뿐이지만.




이래서 네가 가르쳐준 것들을 난 더 진심으로 해야 하나 봐.


나란히 걷는 너와 너

요새 난 네게서 많은 걸 배웠거든.


로블록스의 '입양하세요'를 즐기며 사이버 펫을 귀여워하는 너.

같이 '병철이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진짜 굽는 소리 먹는 소리 들으며 배불러 하는 너.


진짜 같은 가짜지만 진짜 같은 미래, 메타버스를 느끼고 제페토 라방을 즐기는 네 모습 보면서 MZ세대 놀이문화는 이렇구나 새삼 느낀다. 


더 깊이 알아간다.


그리고 네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놀이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되는 삶......


예전엔 그저 컴퓨터 그만해라, 밤에 휴대폰은 전자레인지 앞에 갖다놔.라고만 외쳤지.

뭐 그 말을 매일 밤마다 잊지 않고 외치기는 할 거야. 허리펴라 거북목 조심, 이런 것도.


그래도, 이젠 하나씩 둘씩 함께 하자.

어느 순간 내가 즐기고 있는 걸 발견하고 있어.


우린 더 즐거울 거야.


내딸,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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