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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Apr 05. 2024

그때 그 사장님 이야기

딴청, 학주, 평행우주, 츤데레  | 딸과 함께 극복기 스물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만 지금은 마음껏 딴청을 피우고 싶다.


그래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오늘은 꼰대 사장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예순을 훌쩍 넘긴 예전 회사 사장님은 새해 전체 문자를 보내온다. 지근거리에서 보고를 했던 처지라 낯설지 않은 마음에 답문은 꼬박꼬박. 주소록에 있는 모두에게 문자로 꼬박꼬박 새해 인사를 주시는데 스팸 메시지함에 넣을 수가 있나.


열정적이고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자기 확신이 강하다. 맨손으로 코스닥 상장사 사장되면 다 그럴라나. 자신의 취미를 전 직원과 공유/강요하는 게 취미다.


**일보 주관 건강마라톤을 지원하면 주말 특근 비용 주겠다 하여 동원시키기. 사내 주관 마라톤도 있었다. 심지어 첫 번째 참가하여 여직원 중에 일등을 했다고 부문장이 매우 므흣해했다. 별... 다들 대충 걷듯이 가는데 멋모르고 처음 간 내가 조금 더 뛴 바람이라는 걸 진정 몰랐나 그 사람? 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꼰대오브꼰대 앞에 등장한 바 있다. 내 악몽에도 여러 번 등장했는데 여기까지 침투하는 생각. 이제 좀 그만.


그리고 또 가물가물하다. 마라톤 참가를 안 하면 월급에서 깠던가? 월급에서 자동으로 이체되던 품앗이 비용 같은 게 까였나, 기억은 묘하게 왜곡을 일으키니까 여기까지.


입사하면 무조건 50킬로미터 걷기 당첨. 하루종일 걸었는데 예전 일이라고 이 숫자도 가물가물. 새벽에 시작해서 끝내고 보이는 석양은 나름 낭만적인데 그 과정은 아니다. 시작 전부터 발톱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테이프인지 밴드를 두르고 바르고.

사장, 네가 해라. 지지난달 유기견보호소에서 만난 한 친구. 50킬로는 거뜬히 뛰겠어.

그리고 여기서 끝이었으면 강요라 쓰지 않았을 터.  


새해에는 등산, 격주로 자원봉사도 있었다. 참가는 개인 선택이지만 그 여부를 인사팀에서 기록 및 퍼포먼스에 반영된다. 하나같이 좋은 취미생활이요 사회적인 기여활동이기는 하다만.


그 덕에 지역 내 돌봄 센터 청소, 김장 만들기, 연탄 나르기와 집이 위험한 장소라 한데 모여 있는 쉼터 아기들과 청소년들의 주말 나들이 지원, 노숙자 쉼터 벼룩시장 자원봉사.


다양하게 사회에 기여한 경험을 쌓긴 했군.

원한 적은 없다.  자발적으로 봉사를 한 기억은...... 대학시절 재활원 봉사나 지역 돌봄 센터 활동이 있었다. 아이고 가뭄에 콩 나듯. 부끄럽다.


사회에서 얻은 이익을 환원하려는 마음가짐은 본받아야 마땅하다. 나 하나, 이 회사 하나 돈 더 벌면 되었지에서 끝나지 않았다. 기업이 속한 사회와 나라도 잘되면 더 좋아라는 마인드.


운동권 출신이셨는데, 당시 출생한 분 중에 운동권 아닌 사람 찾기가 힘들겠지만, 아 한 명 있나 요새 티브이 자주 나오시는 한.. 분. 헉. 이제 그만. 내 머리야 그만해.


어찌 되었든 한때는 안철수를 엄청 좋아한 분이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러나 '원한 적은 없지만' 이게 포인트다. 그 많은 것들을 자발적으로 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나이까지 그런 활동을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들지도 못한 것을 보면. 아니,  그 경험마저 없었다면 난 더 나쁜 사람인가. 핑계는 길다. 삶이 바쁘고 벌이가 바쁘고 가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래도 매일같이 써야 하는 감사일기를 생각하면 내가 쓸데없이 양심을 발동시켰다 싶다. 연말이면 인사팀에서 회수하여 맥락이 맞게 90% 이상 적었는지 낱장을 확인했단 말이다. 당연히 인사기록 반영.


입사와 동시에 다시 고등학생이 되었고 퇴사하니 마음에서 시작해 몸에 든 병이 다 낫더라. 역시 할 짓이 아니었다. 내 여가시간을 좌지우지하려는 회사를 그렇게 오래 다녔네.


월급 생각해서 무념무상으로 계속 다닌다 해도 절대로 길게 있을 수는 없었다. 학주 같은 사장이랑 어떻게 평생직장을 꿈꾸나.


소속되어 있는 동안 적응이 되면 회사 문화가 유난스럽지도 않다. 어쩌다 봉사라도 참가하면 가끔씩 착한 사람이 된 느낌도 만끽하고. 근속기간이 엄청난 분을 보면 몸 바쳐 성장한 회사와 한 몸으로 보일 지경. 사장 꼰대짓에 미치겠다 싶어도 공사 구분하지 않고 배움과 취미생활이 하나가 되는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더라. 다소 게으르고 조금 더뎌도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찐이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장님 이야기에 덧붙여 일인샵 로사장과 일사장이 있다.


둘 다 나와 비슷한 나이.

떠나온 동네에서 한 줌인 단골가게 사장들. 떠나오니 가장 아쉽다. 재택근무는 이 나라 저나라 있는 동료들과 줌으로 회식이나 티타임을 했고, 드문드문 출장에서 만난 시간은 너무 짧다. 차라리 대면 만남은 단골 카페, 미용실 등등 가게 사장님들이 더 많았다. 에스테틱을 하는 로사장과 헤어디자이너 일사장은 서로 일면식이 없다. 같은 동네에 내가 두 곳을 다닌다는 게 유일한 연결고리.


그런데 내가 보기엔 나와 평행우주 같은 삶을 사는 듯하다.


아이가 둘 이상인가요? 네, 계속 워킹맘이었나요? 네, 츤데레 남편을 선택했나요? 네,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 상담을 한 적 있나요? 네. 강인하고 생활력 좀 있다 싶은 여자들의 딜레마. 속칭 나쁜 남자에게 끌린 셋.


그렇다 나쁜 남자. 뭐 요즈음 말로 츤데레. 사실은 마음 여리고 착하다 내 남편.


아무튼 동반자로. 이건 꼭 내 딸에게 알리고 싶다. 츤데레는 걸러라. 나쁘기 때문에 그냥 하는 멘트도 더 달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번 난 놈은 영원히 난 놈이란다. 내가 누구 하나 바꾸고 세상을 구원해 보겠다는 그런 욕심 없애라. 사람 잘 안 바뀐다.


 '뭐래?'라고 할 딸이 떠오른다. 그래 그냥 아무렇게나 떠올라서 쓴 말이니 그냥 엄마가 또 그러네 해.


대학시절 단짝친구도 그랬다. 아니 만날 때는 다정했었어. 결혼하고 나니까 왜 이렇지? 그래도 '내가 네 엄청 사랑하는 거 알제?' 하는 어쩌다 날리는 멘트에 또 맘 약해진다더만.


멘탈 약한 여자였더라면 벌써 내다 버렸을 그놈의 책임감, 하늘을 뚫는 책임감에 '잘' 살려고 아등바등. 그러면 가야 한다. 배우러. 내 일분일초가 아깝다.


서로 모른 척 넘기기도 이대로 진전 없이 포기하기도. 나는 진작 결혼하기 전에 알았더라면 후회할 정도였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면 시행착오도 덜 겪고 지금을 감사하는 시간이 더 일찍 왔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네게 더 넘치는 사랑을 주었을텐데......

'우린' 배우면 '더' 잘하는 사람이라고.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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