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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Apr 12. 2024

'엄마'들에게 보내는 편지

도돌이표 | 내딸과 집단따돌림 극복기 스물하나

처음 시작하면서 이 극복기가 스물한 개를 넘어서리라는 계획을 하지 못하고 시작했습니다.


열 개의 글을 쓰고 나면 두 달 하고도 반 정도가 흐를 것이니 그때 즈음에는 모든 게 제자리일 것이라 여겼습니다.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 모두 제자리. 둘째의 어린이집에서 소꿉놀이 후 부르는 노래처럼 도돌이표.


어리석은 제 마음이 바랬바였으나 그렇게 될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실연 이후 나와 그 전의 내가 같지 않듯

깊은 상처를 안고 생존한 내 딸의 마음도 이 모든 걸 함께 겪어 낸 우리 마음도 제자리로는 갈 수 없습니다.


시간은 더디 흐르고 내딸 마음속 상처는 아물기가 더뎌 마음 속에 파도치듯 7개월을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다들 그렇게 아기를 낳는 거란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너만 이래. 너만 힘든 거 아니다. 집에서 뭐가 그렇게 힘드냐.


너네 아이 정도면 하나 키우는 거 반도 힘들지 않다. 엄살도 유별나다. 집꼴이 이게 뭐냐. 먹는 거는 잘 챙겨 먹이니......


내 가슴에 남은 말을 재생합니다.

남에게 들어서보다 마음 속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괴로울데가 더 많습니다.


엄마의 역할에는 왜 이리도 한계가 없을까요.


이력서에 세부 직무 내용을 채운다면 A4 한 장이 모자랄 거에요. 각 가정마다 엄마가 짊어져야 할 몫은 또 얼마나 다르게요.


업무 표준화와 엄마의 역할은 너무 먼 단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상 모든 엄마들이 남들은 어떻게 키우나 흘긋대기도 하고 남들 하는 뒷바라지보다 허덕이기 일쑤입니다.


 욕심, 가족들의 희망 또는 남들 눈에 비칠 우리 모습이 평범함 어디 근처에라도 가는지 확인하고 중간이라도 하려고 급급합니다.


꽃을 즐길 때에는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 인생도..



따져 보면 내 내면의 소리가 나를  괴롭혔던 것이지, 내 편인 듯 남같은 내 남편이나 딸이지만 그 깊은 속을 알 길 몰라 애태운 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여 세상 모든 앞서 걸어간 어머님들과 제가 아는 어머님들께 부치지 않을 이 편지를 씁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모조리 버린 그 시계들은 제 마음을 쓰라리게 합니다.


어머님 왜 집에 시계가 없어요?

했을 때, 한참을 아무 말 없으시다,

시간 가는 게 싫어서.......


 말씀에 제 가슴에도 시린 바람을 느꼈습니다.

 역시 시간을 허투루 보낸 세월이 야속하게 느낀 적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요즈음엔 마음 나누기 친구 만나기가 힘듭니다.

그냥 혼자입니다.

그냥 있어요. 엄마로.




내 딸은 다시 좋아지긴 했어요.

어찌나 마음을 졸였던지 엄마들만이 알 거예요. 

달을 지구를 마음 속으로

몇 번을 돌았나 모르겠어요.


다시 좋아진 걸까요?


움찔거리는 몸을 부여잡고 수백 번의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 아이는 힘들게 잠을 잤어요.

학교는 이틀 내리 결석했습니다.


세 번째 입원 당시 멍청했던 엄마, 내 모습을 반면 삼고 그냥 두었더랬어요. 편히 쉬고 나면, 푹 쉬고 힘을 회복하면 일어설 딸을 믿으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일어났으니까.


내가 널 믿는다면 넌 무슨 일이든 해낼 테니까.


나쁜 생각을 그치는 게 더 어려워요.

미칠  걱정만 하일분일초로 밤을 보냈습니다.


멈추지 않으면 어떡하나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말고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시간을 믿고 너를 기다리자

하는 나와 왜 또 이러는 걸까 우린 어떻게 살아야 좋아질까 하는 내가 서로 싸웠습니다.


한없는 믿음이 정답이었는데,

나는 아장아장 첫걸음 떼는 아가를 마주 엄마였어요. 한 시도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철퍼덕 넘어지면 어떡하나

다치면 아플 텐데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끝이 없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사흘을 쉬어야 한다면 추가로 진료확인서를 떼어 오라 하셨습니다.

중1도 받아준다는 원에 혹시 몰라 예약을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는 아니 아동청소년전문의가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디든 여름이 지나야 의사를 만날 수 있답니다.


잠자는 딸을 기다리며 진료 예약을 해놓고도

제발  갈 일없이 하루 만에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기를 바라기만 했어요.


오전 열 시, 열한 시, 열한 시 반......


소리라도 날까 봐 발끝으로 걸어가서 살짝 방문을 열어서 딸아이가 눈을 떴는지 확인하기는 또 몇 번이었던지...


깨우지도 못하고 언제 일어날지를 알 수 없을 딸을 오매불망 기다리기도 서너 시간이 넘어갔어요. 제 속만 시꺼멓게 탈 것 같던 그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점심 먹으러 오겠냐고..


딸이 먹을 거리를 간단히 식탁에 올려놓고 도망치듯  우리엄마집으로 향했어요. 좌불안석 기다린다고 해서 더 일찍 일어나지도 않는 딸을 두고 걱정이 가득한 한숨으로만 집을 채우기도 싫었습니다.




고맙게도 하루를 더 결석하고 나니 거뜬해졌어요.

이튿날 근처 유기견 보호소를 가자고 제안했더니 딸이 부스스 침대를 나서서 채비를 했어요.

바깥나들이를 하겠다 마음먹어 준 딸에게 마냥 고맙기만 했습니다.


이사를 오면서 딸이 그리도 원하던 강아지를 입양하자 해놓고 한 달이 벌써 흘렀고 차일피일 미루었던 나를 다시 탓해 봅니다.


나를 향한 원망과 자책은 버겁습니다.


강아지를 들이면 개엄마가 되겠다고 장담하는 내딸. 실은 그 뒤치다꺼리로 바쁠 내 미래를 걱정한 거예요.


멍청한 엄마입니다.


내 딸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이정도 시간이 지났고 새로운 곳에 오면 다 아물었으리라 짐작하고 그냥 딸이 원하는 걸 미루기만 했던 겁니다. 너를 먼저라 제일 앞에 두겠다고 해놓고 그건 다 말만 앞선 거였어요.


핑계지만, 지역을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온 이사. 해야할 일들로 바빴거든요.


그리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 보호소 내 오밀조밀 갇혀 있는 길 잃거나 집을 떠난 강아지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 자식이 아픈데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아픔이 없던 때로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떻게 이 나이에 이렇게 어른스러운 처세술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웠다는 중1 담임.

입학한 지 열흘 채 되지 않아 누군가를 따돌리는 무리와  따돌려진 친구 사이에서 보여 준 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네요.


"어떻게 하면 이런 처세술을 나이에 갖출 수 있을까요?"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어요.


엄마로서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때마다 엄마는 어디에 있었니? 하는 내가 바꾼 내게 하는 물음이 를 찌르기 때문이에요.


피가 철철 나는 가슴을 붙들고 혼자서 친구들을 찾아다니고 사과를 받아 낸 딸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마음에 상처 크기만 한 피멍이라도 가슴에 있다며는 좋겠어요. 눈에 보이는 상처라면 찜질을 해서라도 낫게 해 주려고 용썼을 텐데..


떠나면 그만일 회사에서 무슨 역할과 기여를 하고 그 행사를 끝내고 어떤 공헌감을 느끼겠다고 그밤 내딸을 혼자 두었던지 모르겠습니다.


그마저도 아빠가 사과를 받든 시시비비를 가리든 대면하고 오라고 했기 때문이었고 나름 몇몇 아이들과는 오해를 풀었을지도..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어요. 도대체 어디까지 어디서부터 내가 바꿀 수 있는 현실이었을지요.


그저 어리석은 가 미처 돌보지 못한 딸의 마음속 깊이 찔린 그 철봉같이 두꺼운 흉터만 떠올려 볼 뿐입니다.


정형외과의 물리치료와 산부인과 프리페민정은 그저 증상을 완화해 준다는 말뿐었고 악화일로를 가는 딸의 상처를 말끔히 없애주지도 못했어요.


어떨 때에는 너무 막막해서 우주를 한 바퀴 돌고 올 것 같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나를 향한 원망과 자책.


다시 도돌이표.


다시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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