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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Apr 19. 2024

밤톨만 한 평범함

유기견 입양기 | 내 딸과 집단따돌림 극복기 스물둘

시고르자브종을 가족으로 맞았다.


예쁜 갈색털에 까만 눈망울과 불쌍한 눈매. 

가족과 함께 짓기로 한 이름이었지만 널 본 날 처음 지은 별명은 브라우니.

수심이 가득찬 듯 한 눈매...는 연기였나.


보호소에서 외부인에게 허락하는 시간은 한 시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바둑이는 내 딸이 좋아할 것 같았지만 어미젖 뗀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집에 데려오면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순간 눈에 들어온 새끼 유기견.


같이 지내는 남매들이 무겁게 몸을 얹고 장난스레 깨물어도 무던해 보였고 자기 어필은 적당히 하면서도 다른 남매들만큼 많이 짖지도 않았다.

그런 기질이라야 넓지 않은 아파트 살이 반려견에 적당해 보였다. 마당 있는 집이 아니라 미안해 밤톨아..


남편도 같이 고르고 싶어 해서 선택하는 순간하얀 강아지, 바둑이에 이어, 밤톨이를 카톡 사진으로 보여 주었다.


하얀 강아지와 바둑이 남매는 너무 어렸다.


다행히 내가 픽한 갈색 브라우니같은 아이를 보고 얘도 이쁘네 다. 털 날리는 강아지들보다 열대어를 아끼는 남편도 심드렁할 줄 알았지만 이번엔 시작부터 함께다. 이름과 찰떡인 밤톨이. 남편이 지은 이름이다.


지난번 처음 찾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딸이 좋아라  아이도 바둑이 같은 외모였는데 집을 뛰쳐나온 성견이란다. 다시 우리 집 데려와도 길들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 포기했었다.


더는 늦출 수 없겠다 싶던 바로 그날은, 딸이 월요일 하루를 결석한 다음 날이었다.


그래, 하루 결석이 대수랴. 이번 학기, 아니 이번  학교 다니기 힘들면 휴학을 해야 하나 아니면 대안 학교를 알아볼까 하던게 얼마 전이다. 당시 내 마음을 들끓던 걱정과 불안은 마음 저편에 여전히 있긴 해도, 매일 걱정만 하고 살다가는 수명이 쫄아들 판.


아무튼, 화요일 오후 이 학교 간 사이 친정엄빠와 다시 인근의 다른 기견 보호소를 찾았다.


그날 운명처럼 우리와 함께 집으로 온 이 아이는 여기서 멀지 않은 식물원이 고향이란다. 어미 유기견은 아직 구조되지 못하고 새끼들만 구조했다고.


우리가 포인핸드에서 사진만 보고 찾은 아기 강아지는 두어 달 전이라 몸집도 이빨도 여느 성견만 해졌다. 마침 사흘 전 구조된 아기 강아지들이 있다며 우리를 이끄셨다.


밤톨이 어미가 어서 구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지만 그 덕에 밤톨이를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밤톨이 고향을 같이 가자 했다. 주변을 밤톨이와 걷다 보면 어미를 보는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며...


동물 보호소는 갈 때마다 안쓰럽다. 버려졌거나 집을 탈출한 강아지들의 눈빛은 여느 사람보다 더 많은 걸 얘기하는 듯하다. 반갑다는 눈빛보단 왜 왔냐탓하듯한 소리로 귀가 울렸다.


미안, 미안해. 하루 딱 한 시간 외부에 허락한 시간이라 할지라도 너희 평온한 일상을 방해해 버렸네.


보호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크나큰 사명감 없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자식 똥오줌보다 더 잦은 길거리 강아지들 뒤치다꺼리에 사랑도 베푸는 진정한 엄빠 이상이다. 거기서 만난 반장님께 보호소에 사람이 늘 부족하다는 말이 맴돌았다. 어머 저도 그래요. 우리 집엔 엄마가 둘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엄살 부려 죄송합니다..


밤톨이와 집으로 오는 길,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좀 헤매다가 20분을 더 돌아왔다. 켄넬을 조금 큰 사이즈로 사서 아기 강아지는 울엄마 품에 편히 안겨 왔다. 씩씩아기 강아지는 멀미도 없었다.


첫날밤 켄넬에서 재웠다.


너무 어린 둘째도 걱정이고 배변 훈련이 안 된 강아지가 이곳저곳에 쉬를 하게 할 순 없는 노릇이라 다시 신생아라도 들인 엄마처럼 보초를 섰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먹이고 똥 치우고 모든 걸 하기로 한 우리 집 개엄마, 내 딸은 우리 첫날밤에 곤히 잠들었기 때문이다.


낑낑거리는 브라우니(그땐 다 같이 이름을 정하기 전이라 별명이 입에 붙었다) 옆을 한참 지키다가 문을 열어 주니 나와서 쉬를 한다. 배도 고팠던 모양이다.

사료를 몇 알 주워 먹고 한결 조용해졌다.

거의 4시간은 자는지 조용했다. 개도 아기는 아기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 강아지가 예쁘다.

내 딸은 드디어 평생 친구를 만났다며 신이 났다.

 '개귀여워요'

입양 절차는 생각보다 진지하고 길었다. 보호소를 나서기 직전에 반장님이 화급히 잠시 멈추어 보라셨다.

브라우니와 사진을 찍으라며 어딘가 서라시네. 


배경에 '평생 함께 해줄래요?'라는 문구와 천사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새 가족을 들이는 마음에 내 코끝이 주책스레 찡해졌다.


진작에 강아지 입양을 계획했지만 예상보다 늦었다. 그래서 밤톨이가 왔다. 


그때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


밤톨이 복이다,


밤톨만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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