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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May 03. 2024

엄마 은따

회복탄력성과 인생네컷 | 내딸 집단 따돌림 극복기 스물넷

지난 주말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딸이 친구네 집에 가서 파자마 파티를 하고 왔다. 친구 부모님이 일박하고 오는데다 엄빠 없는 시간마다 언니가 너무 엄하다며 딸이 꼭 필요하다며.


열흘을 간격으로 딸의 마음이 피로하면 몸이 안 좋던 경향이 지속되는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내 걱정은 끝이 없고. 잘 다녀올지, 혹여나 어디가 아프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허락했다. 대신, 친구와 놀기로 한 날을 목표로 컨디션을 잘 관리하자는 다짐을 서로 했다.


파자마도 대성공이었고, 월요일인 다음 날 등교도 집보다 먼거리라 일찍 잘 했단다. 아침은 친구랑 전날 저녁 편의점에서 사 온 먹거리로 해결했다 하니. 놀랠 노. 고맙기도 하고. 네 회복탄력성에 무한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그러고보니 파자마 파티가 옛날 생각을 나게 했다. 이사 온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딸에게 좋은 친구가 많이 생겼는데. 코로나 시절이었다고 치더라도 거기서는 어려웠던 이유가 내게도 분명 있었지.

항공뷰, 항공샷? 뭐라고? 암튼 예쁘다. 좋은 추억도 쌓고.

 

이제와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초등 여아 저학년 때 인맥은 엄마 혹은 주양육자가 만드는 거다.

  

초등 일학년 숲체험을 시작했다. 격주에 한 번 꼴이지만 거의 2년 엄마들은 산 아랫자락 어딘가 카페에서 소위, 티타임을 하며 대기했다. 어느 학원이 좋다더라 하는 이야깃거리에 남편 불평으로만 끝나면 다행이고, 동네에 이애는 어떻다 저애는 저렇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오면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불편했다. 아직 겪어 본 적 없는 애에 대한 색안경 씌우기 때문인가.


처음에는 신선했다. 유치원을 졸업시키고 우리 딸이 학교에서 잘 하는지, 남들 눈엔 어찌 보였는지 듣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남(딸을 포함해서) 얘기 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 귀중한 토요일 오전. 일 안하는 주말 시간, 굳이 어떻다더라 저떻다더라 타령이라니 나름 노력했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엄마들이 모이면 '나'를 주제로 되는 시간은 드물었다. 회를 거듭하여 애들이 산에서 뛰노는 프로그램을 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동안, '너네 딸'이 어느 학원에서 무엇을 하느냐? '저기 옆집 딸'은 무엇을 잘 한다더던데, 그거 잘하려면 어디 보내야 하느냐?로 채워진 시간들.


그래서 거리를 두기도 했고 엄마 사이에 사회랄 게 있었나라고 치부했다만. 실제로, 회사일, 집안일로 바빴고 접점도 없었다. 네 동생이 태어나고부터는 왠걸 정말 여유가 사라졌지.




같은 단지에 살아서 끈끈해진 몇몇 엄마들과 함께 일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이유로 생파를 같이 하긴 했었다만 어느 틈엔가 코로나로 두문불출. 그래도 알음알음 논술을 같이하게 뭐를 같이하게 나를 제외한 몇몇은 둘레 둘레 모이는 소리가 모르고 싶어도 다른 이를 통해 들리기도 하고, 길가다 목격하기도 여러 번. 'OO엄마는 바쁜 거 같아서, 아 같이 수학하는 친구들끼리 생파한거야 작은 규모로. 알잖아.' 미안, 딸. 내가 은따였네.


논술, 수학, 영어, 보드게임 등등을 X엄마는 몇몇 멤버를 픽해서 딸의 무리를 만들었다. 저학년에 수학을 시키지 않았던 내딸은 다른 애들 따라 이것 저것 하지도 않았고, 나는 아니 보드게임을 하러 학원에 모여? 하며 참 신기방기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듣게 되는 성교육 특강했다더라에 우린 스리슬쩍 빠져 있었다. 갑자기 특강 참여하고는 또 뒷풀이를 조직해서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한 테이블에서 한 잔 돌리고, 애들은 애들끼리 쏙딱쏙딱하면 성교육은 미션 컴플릿이다.


아, 거듭 내가 너무 단순화하고 있는가 계속 객관화를 해보려 해도, 당췌 모르겠다. 정말. 숲체험은 필수였는지, 숲체험이 저학년에서 끝나면 또 이어지던 천문대 별자리 찾기 체험에, 그리고 성교육 등등 이 많은 교육에 정말 '외주'가 정답일까? 그렇게 저당잡힌 주말을 모아 모아서 가족끼리 추억을 만드는게 더 낫지 않나?

우리가 만든 추억, 또 쌓아갈 추억.



엄마도 다른 엄마들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돼?하고 내딸은 물었었다. 언제였더라? 안방에서 우리 둘이 앉아 있고 '미안, 그건 안돼.'가 내 답이었겠지. 구구절절 길었던 네겐 의미없는 말들.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왜 똑같은 요구 사항이 아빠에게는 적용되지 않니. 왜 엄마들에게만 이 모든 아이 키움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오롯이 남겨졌는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마음 속 갈등.


현명한 너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통제할 수 없이 만들어진 무리들은 결국 엄마들이 만들었다는 걸 깨닫고 물었던 거지.


둘째인, 우리 밤톨이 형아가 형아라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런 무리와 인맥을 만들어 줄 자신이 여전히 없다. 남아들도 축구, 농구 학원에서 만난 무리가 생기기는 해도 여아들만큼 배타적이지는 않기 마련. 아 이 발언에는 남, 여 서로 다름에 대한 견해이지, 이게 나쁘고 그게 옳다는 아니다. 아무래도 여아들이 무리 지음에 적극적인 본능을 갖고 태어 난다. 그 이유는 태초에 사냥 채집에 나선 남자들과 육아를 위해 모인 여자들.... 중략ㅋㅋ


아무튼지간에, 아이들 교우 관계는 아이들이 만들어 가야 정상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늘 퇴근 후에도 딸의 입으로 듣는 친구와 지낸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가끔 가다 엄마들을 만나도 나만큼 자세히 내딸 얘기와 소식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였나보다 잘 나누지 않는 딸내미 엄마들은 굳이 다른 애 엄마들을 찾아 탐정이 되기도 하고 경쟁이 판치는 사회에서 정보도 너무 귀중했겠다. 너무 냉소적인가? 아니면 너무 이해하려 했을까?


그러고보니 저학년때는 묻지 않아도 퇴근하면 재잘재잘 학교 이야기 한 보따리를 안고 식탁에 앉던 너, 요샌 내가 캐물어도 뜨문뜨문. 심지어! 알고보니 최근 시작한 수학 학원 원장에게 다 털었다고 하던데? 아니 나는 공책도 하나 새로 만들었다고, 네 친구들 캐릭터 분석하려고 그날그날 해준 말들 다 적어놨다고. 흐어엉 나한테 나눌 이야기도 좀 남겨놔. 아니야, 엄마가 아닌 믿을 만한 좋은 어른 하나가 생겼다는 거잖아, 장하다.

 

맞아, 넌 거기서도 그랬어 피아노 원장님이 널 얼마나 반겨했는지, 친구처럼 잘 지냈는지, 지금도 잘 지내시나 궁금하겠다. 하나의 사회를 잘 졸업하고 새로운 사회에서 또 잘 해내는 네가 대견하다.

 

엄마는 계속 이 길을 갈게. 아이들의 친구는 아이가 직접 만드는 게 맞다고.


제 아무리 소극적이고 늦되어서 친구 사귐에 더디더라도 기다려 주고 스스로 해내게 응원하는 이 모든 과정이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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