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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Apr 26. 2024

밤톨이 새엄마

행복과 나락의 대환장 쇼 | 우리 딸 집단따돌림극복기 스물셋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얼마 만에 늦잠인지. 아니 일어나기 싫었다. 눈뜬 채 바닥에 붙어 있었다.


아침이 싫었다. 내 인기척을 귀신같이 느끼는 우리 밤톨이는 내가 부스슥하면 쫑긋 할 텐데.

아이라인이 무척 길다. 사실 귀는 늘 접혀있다.

밤톨이 산책, 밥, 똥, 이것저것 다 무기력해졌다. 의지상실.


며칠 전 꽃이 만발한 도시와 허니문기간이었지.


'산을 당겨 놓은 거 같아. 바다를 당겨 놓은 거 같아.'라는 말에 어찌나 우쭐했는지.

우리 집으로 여행 온 친구는 벚꽃 축제가 시작하던 날 와서 그 꽃봉오리 채 다 피기도 전에 꽃을 못내 즐기고 떠났다.


그땐 모든 게 아름다웠는데. 내 눈에 끼워진 허니문 필터 인지, 친구가 만들어 온 밥솥 깔개 덕분인지.


행복과 나락을 오락가락한 지가 벌써 몇 달 째일까?


비 오는 소리와 꾸물꾸물한 하늘은 핑계일 뿐이라 할지라도 다시 나락에 빠진 채 보는 하늘은 외롭다. 흰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하늘색은 내 마음 같다.




밤톨이를 가족으로 들인 후 개통령 강형욱 님의 영상을 공부 삼아 찾아 보았다.


그분이 나온 요정식탁을 보다가 너무너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가 마음속에 부글부글했다.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이게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이걸 비워내야 내가 살 것 같아.

나는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쓰지 않고 살 수 없다.


역시나 책이 나를 구원한다. 이야기 속에서 지기를 발견한다. '라이팅 클럽' 김작가는 글을 쓰지 못해 종양이 생겼고, 딸 영인은 뉴저지까지 가서도 계속 쓴다. 글 쓰는 영인이 스스로 나무만 낭비한다 자책한 것처럼 불편손목을 눌러 본다.


아니다, 이건 날 살리는 시간이다.


할머니가 손주 앉혀놓고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는 하루살이 고단했던 손주와 할머니가 도란도란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었을 텐데..


내 국민학교 시절 집 앞 평상은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가 한데 모여 콩나물 다듬으며 자식 욕 남의 편 이야기꽃이 함박 피었었다. 그 옆에서 동네 친구들과 가위바위보 왕놀이 술래잡기하던 기억들, 


나가노는 거보다 집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다. 옆집 동생네 외국 동화 한 질이 부러워 한 권씩 야금야금 빌려 읽기도 했다. 그때 동네 낮은 이웃집 담벼락과 목 끝까지 올라 온  내 이야기를 언제든 들어주던 옆집 아주머니들..


다시 그 시간이 필요하다.

쳇바퀴를 돌던 다람쥐가 경로를 이탈한 듯 나는 자주 안절부절 못한다. 목적지도 모르고 쳇바퀴를 돌리던 때 난 더 편안했었나. 무엇이 내 마음을 들쑤시나..


지나고 보니 우리 딸은 개학하고 2주 후 아픈 몸에 월, 화 이틀을 결석했고 그로부터 2주 후 붕 뜬 에너지에 토, 일 연이어 못 잔 바람에 월요일 하루를 결석했다.

다시 2주 후 월요일 하교길에 허리가 너무 아프다며 전화 온 딸과 같이 정형외과를 갔다. 그날은 수학학원만 제꼈다.


약속된 2주가 가고 있다.

시나브로 좋아지고는 있다.


매번 암호를 풀듯 내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기가 쉽진 않다. 하지만 노련한 탐정이 되어 가고 있다.

좀더 빠릿빠릿하게 셜록 홈즈가 되어야 하겠다. 널 수렁에서 건져 내는 건 우리 몫이다.


방황 혼란 혼돈 무어라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는 내 상실감은, 어쩌면 네가 잘 이겨내 주는 것을 알아 챈 내 마음이 이제는 내 차례이니 나 좀 돌봐줘 하는 꾀병인가 싶다.


우리 모두,

새 도시에서 잘 적응해 줘 고맙다 하자.


싫어 병에 걸린 밤톨이 형아와

극씸한 사춘기에 살아 느라 분투하우리 밤톨이 계모도 함께.(밤톨이 밥과 산책에 시들해진 내 딸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 괜찮아 딸아 엄마가 챙기고 있어)

그리고 혼자 울음 삼키는 내 남자, 주말 아빠도. 고맙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내자.


주문을 외워 본다.


그리고 오늘을 산다.


둘째가 감기에라도 걸려오면,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울 딸이 호출이라도 하면 어디든 달려가기로 한다. 지금 웃으면 되고 어디선가 날아 온 꽃향기에 입꼬리가 올라가면 그만이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정리를 해보려 용을 써보기도 했다. 헛헛한 마음을 둘 곳 없어 빗속에 우산을 쳐 들고 자동차 전용도로 옆 인도에서 하하하 웃으며 잰걸음도 해 봤다. 그냥 웃었다. 웃으면 복이 온다며. 모르겠다. 그래도 바닥을 치던 때보다는 나아지겠지.

일 밀리미터만큼이라도.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도 힘을 내기로 한다.

낮에 뜬 달,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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