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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May 10. 2024

경단단녀 피해의식

코바늘과 성취 사이 | 내 딸 집단따돌림 극복기 스물다섯

잘하는 것 잘한 것 없는데 제 잘난 줄 알고 살다, 나 '못난이'였구나 했다. 피해의식이야, 하는 남편 말에 각성. 언제부터였나, 단짠단짠. 매콤 달콤. 들쑥날쑥. 아이가 잘 지내면 행복에 겨워하다, 반대면 지옥행. 그리고 이제 숨 좀 쉬어볼까 하면 불쑥 머리를 내미는, 자격지심, 인정욕구와 피해의식까지. 빽빽이처럼 내 마음 빼곡히 들어 찬 생각들을 정리해야 했다.


코바늘로 수세미, 휴지마리 통, 인형 드레스, 딱지, 뚝딱뚝딱. 정서불안이라며 스스로를 낮추는 내 지인. 내 눈엔 프로급 솜씨라 소품샵 열면 좋겠다 하니 '유튜브에 다 나온다, 누구나 이 정도는 다 한다'라고 손사래.


나도 마음이 어지럽고 책이 눈에도 머리에도 안 들어오면 컵받침, 수세미 만들기 코바늘을 집는다. 그나마 똥손인 내가 하기에 가장 좋다. 인형 눈알박기라도 해얄 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고 아무것도 해 놓은 게 보이지 않는 지금 내게는 꼭 필요한 취미다. 그래서 '이건 그저 정서불안일 뿐'이라는 친구 마음, 이제 알 것도 같다. 마음에 떠오른 잡념, 걱정, 불안을 털실과 떠내려 보낸다. 이런 걸 나 말고 누구 보라고.


문득, 엄마가 짠 발이 떠올랐다. 예쁜 파란 실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아파트 현관을 꽉 채운 크기의 그 발. 아, 나 우리 엄마 딸 맞네. 그렇대도, 우리 엄마는 금손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성당 포스터 밑그림도 그렸다. 손재주와 눈짐작은 타고나는 거라면 왜 그게 내 피에는 섞여 오지 않았을까. 나도 예술 좋아하는데 손끝으로 오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예쁜 울 엄마


엄만 니트며 옷도 여러 벌 만들었다. 우리 어릴 때 엄마들은 뜨개질로 옷 한 벌 안 만든 적 없겠다만.. 아까운 성적 버리고 여상으로,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우수한 성적으로 군무원이 되셨다. 엄마와 산책하다가 저어기 어디메가 엄마가 근무하던 터라고 하셨다. 오십 년 전 바쁘게 일했던 그 공간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언저리에 자리 잡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여러 해 전,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끊어진 경력을 이으러 가던 첫날, 현관에서도 보았던, 설레던 눈빛이 선했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좋은 직장 그만두셔야만 했는데. 셋째 딸인 내가 출근길마다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안기기 싫다고 주야장천 울어대는 바람이었다고.


이게 다 업보였군..


코끝을 찡하게 만든 그 눈빛. 나는 아마 거듭 떠올리고 또 떠올릴 거다. 엄마의 꿈, 눈빛을 오롯이 기억하는 나. 이번엔 경. 단. 단. 녀인가. 요샛말 경력 보유 여성. 경력을 보유한 적이 있으니까, 경보녀라며 말을 바꾼 들 내가 직면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구직 현실은 팍팍하다. 내 앞에 어여쁜 구직자들이 줄지어 서있다. 최저 시급, 시간제도 감지덕지 마음먹어본들, 갑작스러운 '돌봄' 요구를 군말 없이 오케이, 이해해 줄 고용주가 몇이나 될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현실에 대한 자각 없이 애가 셋이면 넷이면 몇백을 준단다 금리가 빵프로란다 하는 정책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갑자기 아픈 아기를 퇴근 시간 전에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동료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지거나 스스로 추가 근무를 해서 똔똔 만들어야 하는 현실을 당최 모르는 걸까.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역대 최저 출산율은 더욱더 낮아지기만 할 거란 걸.


딸 2학년인가 3학년때였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학원을 가던 길, 유치원생 아이와 부딪혔다. 멀리서 미리 피하려고 애를 많이 쓴 모양이었다. 유치원생은 다행히 다친 곳이 없었다. 내 딸 무릎이 많이 깨졌다. 회사에서 일하다 급 걸려온 전화로 유치원생 엄마에게 사정을 들었다.


하필 퇴근이 한 시간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난 바로 달려갈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다 내팽개치고 그냥 달려갔어야만 했는데.. 땡퇴근.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다. 구세주 같은 유치원생 엄마 도움을 받으며 절뚝절뚝 자전거를 끌고 텅 빈 우리 집으로 향한 딸.


한 발 늦은대로 쌩쌩 달려가 근처 병원엘 데리고 간 기억이 다. 혼자서 딸은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도 그때가 기억이 날까. 왜 이 에피소드에 아빠는 등장하지 않을까?


당연하다. 아빠의 직장은 가깝지 않았고, 과연 딸이 아파서 조퇴 좀, 하면 상사 부하들은 흔쾌히 예쓰했을까? 아니며는 으이구 마누라는 어쩌고 못난 인간 이렇게들 생각했을까. 어찌저찌 아빠가 왔대도 병원마저 닫은 시각이었을테다.


엄마가 된 후, 직장을 구할 때 철칙은 직장은 늘 보금자리로부터 십 분 거리일 것. 원하는 회사나 일보다 일과 삶을 병행할 수 있는가가 선택의 우선순위였다.

 자기 꿈을 쫓는 것이 이기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이하늬의 백상 수상소감에 그래, 그러니까 내말이. 했다.


이렇게 엄마로 살게 된  피해의식은 시대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아니면 내 들이 차곡차곡 쌓여 자격지심과 함께 무의식 바닥에 뿌리내린 것인가..


자존감이 내려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현상: 피해의식,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조차 자신도 모르게 왜곡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음
타인보다 내가 더 못나거나 가치가 낮다고 느끼는 감정: 자격지심,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그저 받아들여야 할 객관적 사실일 뿐임을 기억하라. 자기 비하는 금물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내 자존감은 내려가고 있었군. 그래서였구나 사람 만나기 꺼려졌던 것. 나는 내 심리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질 못 했다. 내 짝지가 더 통찰력이 있게 내 변화를 알아봤구먼.


탄탄한 방방이 스프링 같은 탄력성을 지니고 회복하는 딸. 고맙기만 해도 모자라겠구만. 난 그저 곁에서 딸이 성장하는 모습 지켜볼 뿐이건만 뭐 한 게 있나, 내 맘에 덩달이 생채기는, 수영모 자국 없어지는 속도처럼 느리게 느리게 회복이 되는 것일까. 늙으면 마음이든 몸이든 회복이 느려지는구나. 또 나이를 탓하지만 그나마 나이라도 먹어서 가끔 비라도 와줘서 고맙다. 나이나 날씨가 아니라면 도저히 내 이기심, 아니 느린 회복 속도를 정당화해 줄 이유를 찾지 못하니.


부치지 못할 편지, 수세미로 쓰기엔 너무 아름답다.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에서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가 돌봄의 힘듦과 무모하게 출산과 육아의 길을 시작한 용기에 대해 덤덤히 썼다. 그 유명한 작가도 애가 둘이 있구나, 아니 둘째까지 낳았구나. 내로라하는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현장에서 말로 다 나누지 못하는 엄마로서의 찐 삶과 깊은 속내가 이 두껍지 않은 한 권의 책에서 말한다. 엄마도 성취에 미쳐도 괜찮다. 너보다 더한 엄마도 많다. 아. 다행이야 난 좀 덜 미쳐 있었던 거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목숨, 내 시간을 내어주고도 모자라 내 모든 사랑을 주어야 할 의무가 내 자아실현 인격완성의 욕구보다 앞서 있다. 내 딸과 밤톨이 형아를 사랑하는 시간을 다음으로 미루는 미련한 짓, 예를 들면 워라벨을 추구하는 거 같은 것보다. 밥도 잘 못하고 늘상 자격지심에 사로잡히고 인정욕구가 불쑥불쑥 올라오고  내 인격이 완성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루 24시간 공평하게 나눠 받음에 감사하면서도, 우선순위를 세우고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기 위해 양손 걷어붙이자니, 나는 무엇을 희생해서 무엇에 시간을 할애해서 어디까지 무엇을 목표로 내달릴 수 있을까? 무슨 무슨 업무 프로세스 만들기나 회사 일은 아무리 어렵대도 결국 남일이고. 내 가족 일은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일이다. 내 선택에 후회가 남는다면 이 역시 내 것이다.


그러므로 제발

간절히

바라기를

환한 빛이 비치고

 모두를 감싸 안고도 남을

너른 길과


우리를

덮고도 남을

사랑이

매일매일

마를 일 없을 샘에서


퐁퐁퐁

솟아나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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