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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May 17. 2024

겠냐고.. 딱히? D+100

사춘기, 거침없이, 헤매기 | 내 딸 집단따돌림 극복기 스물여섯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어찌나 눈부신지.

두둥, 딸이 드디어 사춘기 진입. 또래와 비슷한 나이에 사춘기에 들어섰다는 것은 매우 괄목할 만한 사건이다. 적어도 내게는.


퇴원 D+100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이날이었다.

어린이날과 영광스런 백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겠냐고.(우리 딸이 하루 한 번은 꼭 하는 말) 실은 우연히 우리는 섬에서 1박2일을 강행했다. 밤톨이도 함께.


섬에서 살고 있는 대학 후배네와 티타임도 가졌다. 딸은 주로 말보다는 표정으로 을 다 전달 했다. 나는 괜히 만나기 전 딸에게 잔소리였다. '딸아, 실수 없자~'하니 '내 알아서 할게~' 한다.

세 딸들과 손주 밤톨

우리 부부는 딸을 설치류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눈이 마주치면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춤도. 잘 자요 아가씨, 포철고 챌린지도 곧잘. 학교에서도 그러냐 하니, '겠냐고~' 하는 딸. 내 생각엔 '딱히?' 못 그럴 것도 없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운동회 응원전에서 센터에 서서 잘자요 아가씨 챌린지를 하고 오셨다.


'딱히?'와 '겠냐고~'는 요새 딸이 자주 쓰는 말이다. '딱히?' 부사 하나에 많은 말을 생략한다.

아이고, 그러다 실수한다, 하면 '겠냐고~'. 이런 식이다.


딸에게 사춘기가 왔다. 길고 긴 여정과 오랜 시간 오락가락. 사랑을 한없이 표현하고 사랑받기를 갈구하던 게 고작해야 올해 초였다. 그때는 이상하다 평소답지 않게 왜? 싶었지. 돌아보니, 퇴행, 그 어두운 터널의 끝자락이었지.


오늘 하루 어땠어? 하면 '딱히...(나쁠 건 없었는데).' 하는 칼답과 심드렁한 표정이 곁들여져 토끼굴같은 자기 방으로 향해야 제맛. 아하, 사춘기다. 동네 사람들 드디어 저희 딸에게 사춘기가 왔어요. 확성기로 아니면 아파트 방송으로라도 알리고픈 마음, 정말 가득하다. 심드렁과 무심함에 감사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다시 돌아와서, 우리 가족은 오래간만에 나들이를 했다. 섬이지만 대교로 이어진 곳. 거제. 빨간 날이 연일 이어진 날 남편 지인도 그리로 향한다 하여 일주일 전 뚝딱뚝딱 유능한 남편이 숙소를 잡았다. 바다뷰, 스파가 있는 펜션이라 물 좋아하는 둘째와 딸에겐 딱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장대비를 뚫고 갔지만서도, 이튿날 맑은 하늘과 파란 바다에 신선한 공기가 도처에 가득했다.


작년 말, 한때 몸담았던 노래패 선후배끼리 MT를 갔다가 또, 한때 룸메이트였던 대학 후배를 만났고 그렇게 연락이 닿아 이번 여행길에서 그 후배네 가족과 조우하기로 했다.


대학 노래패는 멸종된 공룡 같아서 이름을 들으면 모르는 이는 없지만, 이제사 찾을려고 치면 찾을 수 없지. 거기서 우린 서로 마음 맞는 평생 보고픈 좋은 이를 많이 만났다. 진심과 노래 그리고 기타. 꽝꽝 신디사이저 치며 노동가에, 노래여 우리의 삶이여, 하며 삶을 노래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라 한 중간에 모이기로 했다. 곳곳에 살던 이들이 긴 시간 육아에 파묻혀 있다가, 장년이 다 되어 없는 여유라도 짜내어 만난 어느 밤 끝없이 노래 부르자 했다. 바삐 사느라 잊고 지냈던 후배 소라도 온 가족을 몰고 왔다. 난 딸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혼자였다. 예정에 없던 입원으로 함께 할 수 없었다. 너라도 잘 갔다 와 하는 남편 아니 내편 덕분에 혼자라도 고고.  


깊은 밤, 소라와 여럿이 도란도란하다가 '그때도 언닌, 사랑 많이 받고 자란 거 같았어, 거침없었잖아.' 했다. 고맙게도. 아, 그래 보였었나? 고작 대학교 2학년이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나는 분에 넘치게 사랑을 받았고,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인걸, 어느 자리에서든 꾸미려 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있는 그대로 좋은 점을 봐주는 귀인같은 친구를 얻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치장해서 만든 우정은 오래 갈리 없으니. 소라도 거침없다. 그래서 우린 잘 맞았다. 떨어져 보낸 시간이 무색했다.  


아무튼 지간에 밤 열 시가 넘어 밴드 공연을 끝내고 자리에 합류한 '사기캐'(당연, 실명은 아니지만 이렇게 불러보자) 후배는 내게, '누나는 가끔 '띵'하는 말을 해요'한다. 뭔 말이지 싶었다. 근황을 나누다가, 그간 내가 보람, 연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고 어떻게 이를 살아낼지 고심 중이라 하니, 자신은 아무 생각이 없다고,

'넌 완성형이니까'라고 대꾸를 했다. 


그 후배는 노래패에서 처음 배운 기타와 노래를 지금껏 잡고 살았다. 주중에는 도청 공무원, 주말에는 버스킹과 공연.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좋아하는 일을 해서인지 건강해 보였다. 제대 후 어찌 저찌 영문과 대학원에 덜컥 합격하더니 박사 과정 팽개치고 회사에 턱 들어가서는 워라밸이 불가능한 현실을 겪더니 이상과 달랐겠다. 불혹을 앞두고 친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 말그대로 사기캐. 원하는 것은 척척 얻어냈다.


그마저도, 카투사였을 때 서울에서 만났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일 때 대구에서 보았다가 다시 또 몇 해 후 'N잡러'로 사는 후배를 보니, 그가 겪었을 방황과 고난을 징검다리 건너듯 띄엄띄엄 만나서긴 하다.


공부 머리에 기타와 노래, 타고난 재능이 많아도 길 찾기가 쉽잖다. 뭐를 취하고 버려야 하나 나를 탐색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마련. 그래도 내 눈에는 백세시대에 매우 적당한 나이에 자기 길을 찾은 후배를 보면 흐뭇한걸.

행복할 의무를 향해 한 발 내딛는다

섬마을댁과 온 가족을 동반하고 티타임은 말이 티타임이지, 테이블 가득한 에그타르트, 쿠앤크 케이크, 이러저러한 베이커리와 아아 두 잔, 아발라 두 잔, 그리고 딸기라떼 두 잔. 네 살, 여덟 살, 열두 살, 열네 살 그리고 불혹을 넘긴 넷과 밤톨이까지.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역시나 우린 잘 맞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나와 내딸은 아직 방황 중이다. 사기캐처럼 두 세기에 걸쳐 찾을지 두 달이 걸릴진 모르겠다. 노래도 춤도 기타도 재미지다는 딸도. 사춘기보다 갱년기가 가까운 나이지만 청소년 소설에 열광하는 나도, 모두 헤매고 있다. 이 헤매임에도 이유와 의미가 있을지어다.


함께 탐색하고 방황하다, 흐릿하더라도 멀리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등대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겠지.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가는 중이고 이 길이 무슨 모양을 그릴지는 걸어봐야 알거다. 그리고 바라기로는 그저 그 길이 즐거움이 가득찬 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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