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김 May 24. 2024

엄마 업무 표준화

가사도우미, 카멜레온처럼, 그저 즐겁기 | 27

엄마 일은 무엇 무엇일까? 아이 돌봄, 밥, 청소, 정리정돈. 모두 가사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다. 엄마들은 내 아이를 돌보거나 가족 내 아픈 어르신을 돌보거나 혹은 자신을 돌보고 있다. 우울증, PTSD, 트라우마 등등  마음 건강과 이런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자기 마음 돌보기까지 해내면 절반 이상이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되어야 할까? 아니, 어떤 엄마일까? 나는 엄마가 할 일을 잘 정의 내리고 싶었다.


요즈음 내가 스스로 하는 질문이 늘 그렇듯 정답이 없다. 부모교육, 취업코칭 프로그램 등에 참가하면서 많은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길 나누어 보니 놀랍게도 다들 카멜레온처럼 환경에 맞추어 엄청나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엄마 업무표준화는 불가능한 꿈일까?


업무표준화는 조직 내 불필요한 논쟁으로 인한 시간과 관계손실을 줄이고, 조직의 목표에 대한 일관된 행동을 유도한다... 채산경영구도자님의 블로그에서 인용했다.


가정은 조직인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니까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조직에서 엄마는 어떤 '일관된' 행동을 할까? 월수금은 청소, 화목에는 요리, 주말은 대청소. 이렇게 정리될 리가 만무하다. 요리는 매일이고, 설거지도 매일이요,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에 청소도 매일이다. 덧붙여 갑자기 터지는 일들은 계획을 비튼다. 세탁은 세탁기가 건조는 건조기가,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요즘 엄마들 뭐 바빠? 내가 써놓고 왜 내 기분이 나쁠까. 엄마들은 마음마저 바쁘기 때문일까. 어쨌든 집집마다 사는 모습도 제각각이며 엄마들은 다 다른 이유로 바쁘고, 당연히 시간과 관계 손실로 마음 쓰는 게 팔, 구할..


다시 돌아가서, 결국 가정에서 일관된 행동이 요구될 수가 없는가 싶다. 엄마 업무를 표준화해 보려고 했던 내 마음은 하루와 한 주 그리고 길게는 한 달, 일 년 등등 길게 보고 계획해 보고 싶지만. 모든 회사는 이윤추구라는 단순명료한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우는 반면 딸, 아들, 엄마, 아빠가 마음에 가진 꿈이나 투두리스트만큼 저마다 목표가 다르다. 


앞집 옆집 엄마들이 주력하는 일도 바쁜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엄마들은 카멜레온이 빛깔 바꾸듯이 남편, 딸, 아들의 니즈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역할을 신기하게도 잘 소화하고 있었다.

카멜레온 대신 뒷산에 다람쥐



A는 한식, 중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수영장 가기 싫다는 딸을 어르며 보내는 엄마다. 맛있는 요리든 어떠한 요리든 절대 남기지 않는 남편과 아들은 음쓰 및 재쓰 처리에 능하단다. 희 가족은 '그냥 평범해요'라고 소개했을 때 너무나 부러웠다. 


B는 출산을 준비하면서 육아 박람회를 전전하며 육아에 대한 해답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가는 을 길러 내었지만 자신의 작은 키가 콤플렉스라서 키는 잠이다는 교훈을 얻은 결과일 뿐, 부작용으로 너무 이른 새벽에 아들이 깬단다. 남자들끼리 쏙닥거리고 혼자 말도 성격도 안 통해서 엄마는 속상하다며. 


C는 육아 서적을 백일 동안 읽고 작심삼일을 거듭하며 사춘기 딸을 키우고 있고 한때는 문학소녀였지만 지금은 요리를 더 많이 하며 시트콤에 나올 법한 아이 셋과 곰 같은 남편과 함께다. 


D는 내가 딱 5년만 젊었어도 하는 말을 거듭했다.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네다섯 개 자격증 보유자.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건만. 시댁에 이은 아버지 간병 및 어르신 돌봄이 끝나고 정신 차려보니 이젠 노견이 된 애완견 돌봄에 하루가 바쁘다. 


E는 칠 년간 시골에서 올라온 시부모님 아침저녁 차리고, 병환에 병원 비용이 수천만 원. 어린이집 선생님과 식당 이모로 맞벌이를 감당했다. 낮에 같이 있자니 힘들어 바깥으로 나섰다고 했지만 매일 저녁 군말 없이 늘 웃는 낯으로 지극정성이었음을 눈가에 예쁘게 자리한 주름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F는 코로나 예방 접종 후유증 때문에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었다. 고3, 대2 딸이 있다. 고삼엄마 답지 않게 여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지마는 '태움'을 직접 경험했던 적도 있고 지금은 다시 다른 곳으로 취업에 나서 대출 잔액을 줄이려고 한다고.


재우기, 잘 먹이기, 돌보기, 돈 벌기, 누구 하나 그냥 엄마라는 이름으로 퉁 치기에 하는 일에 차이가 크다.


나도, 모든 육아 서적을 섭렵하고, 요리를 배울까, 보육, 요양 무슨 자격증이라도 따야 하나? 남들 따라 뭐라도 할까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이 재산이요,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평범한 하루에 고마움을 느끼기만해도 모자람이 없다. 지금 내 엄마 됨에.


계절의 여왕 속 진정한 여왕, 빛 머금은 장미

결혼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역사를 여러 번 돌아보는 요즘. 일련의 상황이 이 길로 이르게 했지만.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모든 일에는 화와 복이 함께 온다. 그리고 나는 어떤 엄마였는지 혹은 우리는 어떤 가족이었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어떤 엄마여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잘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출생 당시와 지금의 1인당 GDP를 비교하면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건만, 가정에서 엄마가 하는 역할에 혁명적인 변화는 없었다. 우산처럼. 전화기랑 비교하면 우산은 왜 큰 변화가 없을까? 비바람에 뒤집히는 우산은 여전하고. 그나마 거꾸로 접히는 우산이 새롭다. 사람이 쓰는 물건 중에 그 모습이 가장 안 변해서 새로울 지경이다. 우산은 십 년 전에도 우산이었고 지금도 우산이다. 엄마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난 빠지지 않고 '엄마'를 얘기했다. 현관 가득 커다란 발을 짠 울 엄마를 기억했던 그때 자각했다. 그래야 했나 보다. 엄마와 가족은 뗄 수 없으니까. 가족이 엄마를 살게 하고 엄마는 모두를 위해 니까. 그래서 엄마는 여왕이다. 오월의 여왕 장미처럼.

이전 24화 겠냐고.. 딱히? D+100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