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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Mar 22. 2024

재발은 언제나 갑자기_D+50

으|집단따돌림극복기 열여덟

퇴원하고 아침마다 다이어리에 D+31까지 쓴 지 벌써 2주가 넘었다. 간밤에 자려는  다친 무릎 소독하겠답시고. 소독을 한 게 다였다.

다시 자려다 나를 불러 가 보니. 움찔한다.  


지난주 처음으로 교복 치마를 입고 나섰는데, 땅에 돌을 못 보고 철퍼덕 절을 했다. 아침에 달려간 보건실에서 소독했고 이튿날 데려간 외과에서 항생제 주사도 맞았지만 소독 안 한지 이틀이 지났더랬다.


그래서 챙겨 봤다는 게 나의 변.  아프다. 아프다고 하는 마음이 엄청 컸던 딸이다. 아파? 어떻게 할까. 괜히 자는 걸 깨웠네 미안해.  이랬어야 하는데 하고 곱씹는다.


자꾸만 곱씹기...

'이런 것은 다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 '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98쪽, 크리스텔 프티콜랭, 부키)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때 이 말 걸, 저 말했어야 하는데. 나는 곱씹기 명수다. 모두 다 내 나름 이해하고 소화해서 동할 힘을 얻으려던 거란다. 괜찮을 거지. 다....



그간 내 잔소리들을 곱씹었다. 입퇴원을 반복하다 10킬로가 찐 딸을 보면서 걱정이었다. 꿈도 꿨다. 살찐 딸 걱정에 내가 잘 관리할게! 큰소리쳤다.


앞으로 마라탕은 일주일에 딱 한 번 만이다 하며 사 왔었던 날이다.  내 딸은 오히려 천하태평. 입에 닿는 음식마다 꿀맛인 듯했다. 먹는 거 절반은 '키'로 갈 나이가 아닐까?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나날이 매우 잘 먹는 딸을 보면 걱정이 스멀스멀 늘었다. 걱정 말고 다른 거 해야 하는데 이 걱정도 고치기 어려운 나쁜 습관이다.


아프기 전에는 좋아하는 것만 겨우 먹었다. 돌이켜보니 아마도 살 맛이 안나 입맛도 안따르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어미가 돼서 혼자 우는 밤을 몰라 봤다.  


이제 너무 잘 먹어 탈이다. 숨만 쉬어줘도 고맙자 했던 그 맘 어디 갔나.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초심 지키기 어렵다. 멍청한 엄마다. 네가 사 준 크런키 겉포장에 슈가 얼굴 못났다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들어갈 뻔했는데 엄말 위해 단 거 사와 준 네 마음을 다시 건졌다.


한참을 자다 뭔가 마려우면 먹고프면 나오겠지.

이 간절한 마음을 받아 거뜬히 나아주길 바란다...




입학식 날이었다.

전학 처리를 마치고 하루 시간표가 끝난 시간 교복사를 향했다. 한 달 내도록 '나도 교복 증명사진 찍고 싶어' 하던 애가 고대하던 순간.


마침 같은 학교에 같은 날 전학 온 모녀가 와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은 입학식 전에 전학 처리를 할 수 없다. 초등학교는 졸업했고 배정된 중학교에 아직 입학 처리도 안된 예비 중1.


전학을 준비하는 우리 같은 처지에게는 당연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몰랐던 교복사 사장이 개학 직전에 남은 여러 사이즈를 이 지점 저 지점으로 보냈다.  


왜 미리 예약해 놓지 않으셨냐는 질문은 우문. 지망하는 학교가 미달이 되는지는 입학 당일이 되어야 알 수 있을 뿐이므로 미리 교복 예약을 해 놓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중1 교복 사이즈가 가장 작다. 새로이 교복을 사러 오는 2, 3학년 위주로 재고를 남겨 놓은 사장님.


'1cm 차이로 사이즈를 만들지만, 딱 맞는 사이즈는 받으려면 2주 이상 걸릴 것이었다. 일찍 받으려면 한 두 치수 큰 교복을 사서 고치셔야 합니다'


딸이 몇 번 갈아입고 나올 때마다 잘 맞나, 편하나 물었다. 너무 커도 남의 옷 같고 작아도 매일 입는 옷 불편하니까.  2주 더 기다릴래? 하는 눈짓을 하니, 입학식날 사복 등교하니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을 더는 못 참겠다 했다. 더 기다릴 것도 없고 우리는 사이즈를 큰 치마를 받아 고치기로 했다.


그 엄마는 딱 맞게 예쁜 교복 치마를 못 구해서 아쉬운 모양이었다.  '우리 애 핏 되게 입을 거니까'하는 말을 적어도 세 번. 그 딸은 입 딱 닫고 모델처럼 탈의실만 오갔고 핏 게 입히고 싶은 그 엄마가 낯설었다.


그 여유는 어디서 나왔을까. 부럽기도 했다. 직장 다니랴 애 키우랴 하다 보면, 예쁜 컵, 접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안일 집 밖 일에 애쓰다가 정신 나면 멍 때리기 바쁘다. 둘째가 더 어릴 때는 소아과, 약국 단골손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면역력이 올라올 때까지 감기, 장염, 등등 줄지었다. 옆집 누구는 잘도 피해 간다며, 그 애 먹는 비타민 추천받아 사 먹이고 유산균 와장창 먹이던 날들이 얼마 전이다.


아무튼 그 폭풍 같은 시기가 지나니 눈에 보였다. 맞아, 이왕이면 다홍치마구나....


그 엄마는 새벽 7시부터 전학생 배정이 된다는 소식에 4시에 길을 나서 내 딸과 같은 학교에 배정을 받았단다. 같은 학교에 전학생 TO가 2명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그 엄마는 새벽 2시부터 줄지은 그 대열에 늦게 조인해서 전학한 거라면 나더러 '운이 좋으시네요' 한다.   


그날 둘째를 새로운 어린이집 9시에 등원시킨 후 우리 셋은 교육청에 도착했다. 대기는 없었다. 집에서 15분 거리인 1 지망 학교를 써넣었고 배정되었다.


고 보니, 한 명 남은 TO였다. 캐묻고 다닐 사람도 없었고 이런 걸 보면 많이 알아도 탈이지만 우린, 아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그저, 운명, 우주의 뜻, 하느님의 순리, 무어라 이름을 붙여도 된다. 기타 등등일 따름이다....




한 시간여 뒹굴다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도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등교할래 하니 다시 움찔이다.  


등교는 물 건너갔다. 담임 샘 전화로 2일은 그냥 병결이 되고 3일 이상은 진료확인서가 필요하다고.


제발 증상이 발전하지 말고 예후가 좋기를 바란다.


나는 쫄깃쫄깃.  이 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어머님 제발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괜찮습니다. 그만큼 약하다는 반증입니다'  


괜찮다. 아파도  괜찮다.


좀 힘들어도 그렇게 괜찮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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