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조언과 참견

by For reira

사람은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면 이야기를 통해 여러 가지를 나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고민을 이야기하고, 걱정을 털어놓고, 별 다른 수가 없음에도 다 같이 웃거나 울어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성인이 돼서는 그런 나눔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하는데, 문제는 때로는 일방적으로 흐를 때가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고민이나 걱정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책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고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부분으로 확산되어 나가기도 한다.


대학교 새내기 때 선배들이 대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첫 만남 때는 그런 모든 것들이 대학생활을 이끌어주는 훌륭한 조언이 된다. 새내기들은 하나하나 귀담아듣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나간다. 그러나 한 달 두 달이 지나, 어느 정도 생활에 익숙해진 새내기들에게도 계속 그런 말들이 계속되면 어떨까. 그때는 좋았던 이야기들이 더 이상 좋은 조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특히 그 조언 안에 말을 하는 사람의 주관이 많이 섞여 있을수록 듣는 사람들 더욱 불편해지게 된다.


- 1학년 때는 그 과목이 아니라 이 과목을 들어야지.

- 그 책은 굳이 살 필요가 없어.

- 이 모임은 꼭 참여 해. 인맥을 만들어야 하잖아.


사실 말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어떨까. 필요 없는 책이라도 그냥 사고 싶을 수고 있고 이 과목이 아니라 저 과목을 듣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작게는 학교 생활부터 점점 나의 교우관계부터 내가 하고 다니는 복장까지 시시콜콜하게 '조언'을 늘어놓는다. 듣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조언' 이 아니지만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왜일까.


대부분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조언을 듣는 사람보다 우위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조언이 반복될수록 그 사람에게 자신의 잣대를 들이댄다. '너를 생각해 준다'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상대를 나의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를 생각해주던 마음은 상대를 귀찮게 하는 참견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사회에서도 반복된다. 직장 내에서 유난히 사사건건 참견을 많이 하는 상사가 많은 이유도 위와 같다. 상사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는 어떠한 이야기도 다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위에 있으니까, 내가 생각해서 하는 말은 당연히 상대가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하직원에게 상사의 대부분의 '조언'은 시시콜콜한 참견일 뿐이다. 듣기 싫은 이야기들 투성이다.


조언은 상대를 생각해주고 진심으로 바른길로 안내해주거나, 상대가 힘들이지 않고 뭔가를 극복하기 바랄 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깊게 고민하게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한 후에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주어야만 비로소 상대가 감사해하고, 듣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언이 된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할 때 우쭐한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없이 자신의 생각만을 전달하는 것은 상대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뿐, 조언이 되지 못한다. 또한 한번 조언을 청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매번 먼저 조언을 해주는 것도 더 이상은 조언이 아니다. 특히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해야 하는 이야기는 쓸데없는 참견 일뿐 절대 조언이 되지 못한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의견을 구할 때 먼저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조언을 해준 뒤에는 잘 해결되었는지를 간단하게 묻고 더 이상 파고들지 말자.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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