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와 동감
요즘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자신과 같은 경험의 사람을 찾는 것이 매우 쉬워졌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말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어색한 일이 아니다.
나도 꽤나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글들을 읽는 편이지만, 그런 글들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댓글이다.
해당 글과 비슷한 경험들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생각을 붙여 넣으면서 때로는 동감하고 때로는 반박하는 여러 짧은 댓글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생각을 갖고 동조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다는 것이 때로는 무섭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의 '특별한 경험' 이 일반적인 경험으로 , 나의 '힘든 고민' 이 별것 아닌 생각이 치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세상에 힘든 건 나뿐이 아니구나'는 생각으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별것 아닌 것으로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다니'라는 자조감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을 때이다. 내 경험이나 생각에 동감하는 사람보다, 반대의 의견에 더 동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볼 때, 당사자가 느끼는 상실감은 생각보다 더 클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가정폭력을 겪는 학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이 인상이 깊었던 이유는 바로 댓글 때문이었다. 첫 번째로 놀라웠던 점은 그 학생과 똑같은 경험이 가정폭력을 겪고 있다는 댓글들이 내 생각보다 많이 달려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겪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사실 나는 내 주변에서 - 물론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 가정폭력을 겪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놀라웠던 것은 왜 가정폭력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느냐 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어떤 절망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보다 작은 일에도 주저앉아 버리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강하게 온 힘껏 부딪히면서 살아나가면 좋지만, 사실 그것도 혼자서 노력하기는 힘들다. 작은 일에도 지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이를 악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 정도 지는 것 정도는 괜찮다면서 양보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성격이 다 다르고 상황이 다 다르다. 당연히 보이는 것도, 노력하는 부분도,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위의 글에 벗어나려고 노력하라고 댓글을 달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선한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었을 것이다. 글쓴이가 나쁜 상황에 순응해 버릴까 봐, 혹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서 노력으로 상황을 벗어난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질책 아닌 질책을 했을 것이다. 만약 나도 글쓴이와 같은 사람이 내 옆에 있었다면, 그리고 상황을 직접 들었다면 , 그 상황을 빠져나오도록 노력하라고 이야기했을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전제는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면'이다. 즉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알고 그 사람의 '환경' 이 어떤지를 주관적으로 안다면, 질책을 하거나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즉 불특정 다수를 향한 넋두리에서는 그 어느 것도 충족이 되지 않는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답하는 불특정 다수도 결국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성격에 의해 동감하거나 조언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댓글을 읽은 원글자 역시 다시 자신의 경험과 성격에 의해 해당 내용을 해석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하는 조언은 정말 위험하다. 그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고 얼마나 위로가 될지를 전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위험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롭고 힘든 상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의 위로가 절실할 때, 사람은 자신을 공유한다.
잘 모르는 누군가가 스스로를 나에게 공유할 때 , 조용히 동감해주고 위로해주자. 조언은 그 후에 해도 괜찮다. 필요하다면 그 사람이 먼저 조언을 구할 것이다. 만약에 그 사람에게 동감이 가지 않는다면 그냥 이야기를 들어만 주자. 질책하거나 반박하는 것보다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상대에게 더 힘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