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신에 '그랬구나!'

배려하는 법

by For reira

왠지 하루 종일 기운 빠져 있는 날이 있다. 특히 요즘에 나는 작은 일에도 금방 화가 나고 우울해진다.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하고 여러 가지 기분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할수록 자꾸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많다. 그렇게 스스로를 내버려 두면, 점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질 것이라는 걸 알기에, 있는 기운 없는 기운을 내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나는 누군가와의 짧은 대화,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면서 기운을 차릴 때가 많다. 혼자 있을 때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어느 순간 시작이 어딘지도 모른 채 안 좋은 생각만 계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 생각의 고리를 끊기 위해 누군가와의 잡담을 한다.

반면에 , 내가 아는 한 친구는 무조건 혼자 있어야 기운을 차릴 수 있다고 했다. 혼자서 영화도 보고, 잠도 자고, 책도 읽으면서 기운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었다.


처음에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끔 우울해하는 그 친구를 보면서, 괜찮다는 한마디를 해주기 위해서 우왕좌왕 앞뒤 없이 말을 걸거나,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졌었다. 반면에 내가 우울해할 때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앉아 있는 그 친구가 너무 서운해서 기분이 더 안 좋아졌던 적도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던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상처를 남겼었다.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 한가득 폭발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사실 소중한 사람들끼리 서운하게 만드는 일들의 바탕에는 '배려'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배려의 방식이 정확하게 나를 기준으로 맞혀져 있다는 것이다.

그 기준을 상대에게 맞춰서 생각하기란 정말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기준을 설명해 줘도, 그 기준이 나와 다를 경우 '왜'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가온다. 그 생각을 하는 기준 조차 '나' 이기 때문에.


'왜 혼자가 더 나아?'

'왜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아?'

'이렇게 해주면 오히려 외롭지 않아?'


이때부터는 배려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배려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배려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배려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내 상황도 점점 서운해지는 거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에 답은 간단하다. 바로 '왜'라고 묻는 나의 기준을 빼고, 그 대신 '그렇구나'를 넣으면 된다.


'그렇구나. 너는 혼자 있는 게 더 낫는구나.'


거기에 아직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는다면, 약간의 나의 변명을 덧붙이자.


' 나는 같이 있는 게 나아서, 너를 걱정해서 옆에 있고 싶어 했어.'


그리고 상대가 나를 배려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자.


'나는 네가 힘들 때 혼자 있을 시간을 줄게.

그렇지만 나는 내가 힘들 때 네가 같이 있으면서 이야기하면서 잊고 싶어.'


이런 대화가 끝나면 아마 다음에는 서로 상처 입히지 않고 서로 고마워할 수 있는 배려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의 기준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 가능 여부는 배려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와는 관계가 없다. 그 기준이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배려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생각해주는 마음의 기준은 절대 내가 되면 안 된다.

상대를 위해서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 배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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