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래.

공감의 중요성

by For reira

공감을 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능력.

사실 누구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일 텐데 이것에 능력이라는 말이 붙는 건 왜일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 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말은 결국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분도 어느 정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 발견하여 어느 정도 타당한 교육을 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올바르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공감의 가르침.

특이한 경우를 배제하더라도 나는 공감을 하는 법을 알게 하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어릴 때 부모님과 친구들과 혹은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아픔을 알고 기분을 읽는 것을 배우면 정말 좋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것에 힘들어하는 것을 본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요새 종종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으로 일방적인 공감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힘듬을 '공감'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또는 여론 몰이처럼 내가 겪은 일을 적으면서 누군가가 '맞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안도하는 것도 많아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일명 '주작'이라고 하는 좀 더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잘못된 행동도 나온다.

그러나 반면에 일대일로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의 아픔을 정말 함께 속상해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이라는 건 사실 단순한 맞장구가 아니다.

나의 감정이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만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느낀다는 건 인터넷상에서 '맞아'라고 한마디 쓰고 잊어버리는 것과는 다르게 더 힘이 든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줄어들수록, 반대로 사람들은 공감을 더 원하게 된다. 결국 올바르지 못한 순환이 계속되는 거다.


나도 요즘 많이 지쳐 있었다.

하루하루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자존감을 잃을 때도 많고, 어떤 일을 해도 즐겁지가 않다.

친구들 한 명 한 명과 속상했던 일을 이야기를 해도 전혀 풀리지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를 가졌었다.

신나게 수다 떨고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최근의 어느 때 보다 즐거웠다.

그 모임이 즐거웠던 이유는 단 하나.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진심으로 화를 내주고, 반대로 그들의 말하나 하나 가 나에게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는 모두의 이야기가 전부 '나의 일' 이였으니까.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공감해주고, 그 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었기 때문에 우울하던 기분도 좀 나아졌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 친구나 가족에게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을 때도 그들은 내 이야기를 허투루 듣거나 빈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은 내 상황을 몰라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말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동료는 그들보다 좀 덜 가까운 위치의 사람들이지만 전부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더 즐겁고 더 안심되고 그것이 위로가 되었던 거다.


공감은 정말 어렵다. 내가 힘들어하는 상대의 모든 상황을 다 함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 사람이 말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서 이해하고, 그리고 그 순간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 때까지. 그리고 그 끝에 '나도 그럴 거 같아.'라고 한마디를 해준다면 아마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상대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 나도 그래.

- 나도 너와 같아.


진심을 다했을 때 모든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마법 같은 말. 누군가에게 다시 삶으로 돌아오기 만들 수 있는 힘이 되는 말. 내가 먼저 그 말을 할 수 있게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분명히 내가 힘들 때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줄 것이다.




keyword
이전 11화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