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동료.
회사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다 보면 종종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너무 바빠서 잊어버릴 때도 있고, 급하게 이야기를 전달해주거나 알려주다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잊을 때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가끔 전달을 잘못할 때가 있는데, 큰 실수가 아닌 경우 보통은 간단하게 사과를 하고 다시 정정해주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된다.
업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전달 과정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았으면 포스트잇 등을 사용해서 잘 보이는 곳에 메모해두고,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는 메일을 쓰고 구두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메일을 쓰고도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심하게 바쁜 경우 제때 메일을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구두로 한번 더 전달함을 써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정말 간단하거나 그 사람의 전담 업무가 아님에도 부탁해야 할 때는 최대한 바쁜 상황을 피해서 요청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그런 경우 웬만하면 바로 업무처리결과를 확인해야 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업무를 하는 모든 사람은 작은 일도 최대한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작은 실수를 하거나 기억을 하지 못할 때가 있으므로,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 관대하게 대처한다. 문제는 무슨 일이든 항상 기억을 못 하는 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때 '내가 그랬나?'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거나 잘못도 된 정보를 알려주어 미안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저런 식의 대답으로 상대의 기억이 확실한지를 묻고 상대가 확실하게 대답해주면 그때서야 어물쩡 넘어간다. 만약 상대가 확실하지 않게 대답하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의 잘못으로 넘어간다. 이런 사람들이 취하는 미적지근한 행동은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속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선사한다.
자신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모든 상황에 대해 거의 습관적으로 위와 같이 반응을 한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선택적으로 기억력을 갖는데 자신들이 불리하다고 느낄 때는 주로 저런 말과 행동을 보이지만, 반대로 남의 잘못이나 자신이 요청한 사항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억력을 갖는다.
선택적 기억 능력자들은 업무뿐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는 상황이 많아지기 때문에 서투른 거짓말쟁이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이들은 업무능력뿐 아니라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도도 매우 낮아지게 만든다.
함께 일하는 부서에 선택적 기억 능력자가 있는 경우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무조건 두세 번 이상 확인해야 하고, 그렇게 확인함에도 결과가 좋지 못할 때가 꽤 많기 때문이다. 내가 본 최고의 선택적 기억 능력자 역시 '내가 그랬나?'라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처음 입사하여 업무를 인계받은 후부터 선택적 기억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은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분명히 인수인계를 받은 사항임에도 매번 '인계받지 못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보다 못한 팀 내 다른 직원이 언제 어느 날 누가 그 부분에 대해서 인계를 해주었다 라고 정확하게 지적해주자 '아 그랬나?'라는 말과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그때는' 인수인계를 처음 받을 때는 정신이 없어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으니까'라는 마음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이 다시 한번 가서 그 내용에 대해서 정리해주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업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 사람의 선택적 기억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어떤 사항을 요청을 하면, 알겠다고 대답을 한 뒤 바로 처리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결과를 요청하면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반응을 했다. 답답해진 요청자가 '언제 까지 해주기로 했다'라는 대답을 정확하게 해야만 '내가 그랬나?'라는 말과 함께 책상에 돌아가서 느릿느릿 일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전달해 달라는 사항은 너무도 당연하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전달받지 못한 사람이 와서 한마디 하면 '내가 전달 안 했나?'와 같은 태도를 취했다.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그 사람의 '실수'를 집어내지 못하면 순식간에 모든 실수는 상대의 몫이 되었다.
결국 이 사람과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아주 작은 요청사항에도 메일로 통보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메일조차도 빠르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메일로 통보하고 내용을 전달하면서 메일로 다시 확인하라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업무는 늦어지기 일 수였다. 요청자가 답답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러 가면 언제나처럼 '내가 그랬나?'라는 대답을 했고, 메일을 찾아보라고 이야기하면 메일함을 보면서 '메일이 왔었나? 왔었네. 이제 봤어요'라는 말과 함께 다시 느릿느릿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요청한 사항은 빨리 해달라고 닦달해댔다. 요청받은 팀원이 바빠서 기한을 좀 넉넉하게 잡아서 답을 주겠다고 해도 '내가 이거 요청했는데 기억 안 나?'라고 말을 건네며 마치 잊어버리고 일을 해주지 않는 사람처럼 몰아갔다.
결국 팀원들은 그 사람과 협업을 꺼리게 되었으며, 아무리 일이 많아도 최대한 그 사람을 배제하고 일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보다 못한 팀장이 따로 불러서 요청사항을 따로 적어놓고 최대한 실수 없이 빠르게 처리해주라고 당부했으나, 대답만 잘할 뿐 결과는 똑같았다.
선택적 기억 능력자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팀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는 관계가 없다. 불리한 상황에 빠지기는 싫지만 일도 하기 싫기 때문에 미룰 수 있는 한 최대로 미루고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발뺌을 하는 것뿐이다. 그들은 자신이 그렇게 발뺌하여 일이 다른 쪽으로 넘어가거나 다른 팀원의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자기 혼자만 편하게 지내면 끝이기 때문이다. 그런 태도는 생활에서도 자주 드러나, 자기에게 조금만 유리한 상황이 되면 호들갑을 떨며 반기지만 후에 그 상황이 조금이라도 불리해 보이면 '기억이 안 난다'며 모른척한다.
업무를 할 때 신뢰도가 깨진 팀원과는 믿고 일을 하기 힘들다. 억울하지만 결국 그 사람은 회사에서 많은 일을 받지 못하게 되고, 그 덕분에 제일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편하게 생활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앞에서 아무리 면박을 줘도 그 사람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안 좋은 상황은 기억이 안 나는 척하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답답하지만 이런 사람과 만나면 최대한 협업을 줄여야 한다. 혹시라도 협업하게 되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작은 일에도 꼭 메일을 써두고 틈틈이 닦달해 주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구두로 요청사항을 전달할 때는 주변에 듣는 귀가 있을 때를 골라 이야기해야 한다. 이들은 실제로 업무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뺴도 박도 못할 상황일 때는 미리 그 일을 처리해 둔다. 답답하지만 내가 독박 쓰지 않으려면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득 '굳이 이렇게 이 사람과 해야 하나'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일을 대부분 처리해주기 시작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다. 결국 피곤해도 상대가 원하는 대로 놔두지 않을 것인가 와 피곤하니까 그냥 힘들어도 내가 처리할 것인가 의 싸움이 된다. 도대체 회사 와서 같이 일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되는 거냐고.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