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량 Oct 17. 2023

아주 진부하고 상투적인

집이라는 한 글자 (20)

부동산중개소, 단독주택과 빌라, 아파트와 땅을 뒤섞어 '부동산'으로 얼버무린 이 이야기는 어느새 결말에 가까워진다. 不動産. 움직이지 않는 자산. 그래서 묵직하고 둔중한 자산. 거기엔 이를 떠받치는 뜨거운 욕망이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은 끊임없이 요동친다. 용암처럼 분출한다.


물이 끓는 것처럼 마음이 들끓을 때가 있다. 쓰고 싶어서, 뭐라도 한 줄 쓰고 싶어서 허겁지겁 노트북을 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았고 아무런 마감도 없는데, 혼자서 열심히 쓰고 덧붙였다. 그게 모여 하나의 시리즈가 되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삼킨 뭔가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다. 목에 걸린 이물감부터 배를 채우는 포만감까지. 그리고 여전히 석연찮은 구석들까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밀어내던 마음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와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었다. 그 감각은 몹시 낯설었다.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하며 매트 밑 완두콩 한 알에 잠 못 이루는 사람 같았다.


완두콩 한 알은 호두알 그리고 사과 한 알처럼 커져갔다. 좋은 손님 오시길 고대하며 잠이 들었고, 좋은 물건 만나길 바라며 잠에서 깼다. 시세를 트래킹 하고 추이를 살피는 사이 여름이 지났다. 여름 내내 부동산과 나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 감정에 대해 쓰면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운을 떼면 마침표를 찍기까지 나름의 논리성을 갖춰야 하는 게 글이니까. 이리저리 헤매다가도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흘러오다 보니 조금은 깨닫는 게 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봐도 나는 일개 개미에 불과하다. 그걸 겸손히 받아들일 때 다음 단계가 보인다. 어떤 사연이 있건 아이를 낳은 순간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전망을 더이상 생의 신조로 삼을 수 없게 된다. 사람 입 무서운 걸 알게 되며, 돈 귀한 것을 절로 깨치게 된다. 아이의 손톱과 발톱이 자라나는 속도와, 지난 봄 입던 옷소매가 훌쩍 짧아진 걸 보면 마냥 안주할 수 없게 된다. 때론 꼴사납고 흉하더라도 선택지 안에서 있는 힘껏 머리를 굴리게 된다.


결국 사장님은 두툼한 노트에서 매물 하나를 꺼내주었다. 그러더니 가격 흥정까지 도맡아 주었다. 부동산 부자라는 집주인은 별 미련 없이 팔겠노라고 했다. 계약서를 쓰는 날, 부동산 사무실엔 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인센스나 캔들이 아닌, 젯상에나 올릴 두툼한 양초였다. 꼬마는 '왜 생일도 아닌데 초를 켰어?' 라고 물었다. 불어보고 싶다는 걸 말리는 사이 계약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먼저 일어서던 집주인은 나서던 길에 아이구 예뻐라 하며 꼬마에게 만원 한 장을 쥐어주었다. 꼬마와 함께 감사 인사를 하며 속으로 만원 깎았네라고 생각했다. '사장님, 그 노트 정말 마법의 노트네요.' 라고 말씀드리자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으며 '그치, 마법의 노트지? 여기 -안 판다고 함- 써 있는데도 내가 전화해서 설득을 했지.' 하고 으쓱해하신다.


큰 산을 연거푸 넘으며 일은 이렇게 마무리 된다. 마주치는 협곡도, 세찬 낭떠러지도 무사히 건넜다. 갈림길 앞에서 엇갈리던 의견은 끝내 합치되었다. 자잘한 생채기가 남았으나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은 피했다. 그간 애쓴 고생도 알아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셰르파가 되었다.


그게 우릴 여기까지 밀고 왔다. 정착에 대한 욕구, 더 나은 환경에 대한 욕심. 손실을 회피하고 싶은 욕망. 좋아하는 동네를 꿈꿀 수 있다는 건 과분한 행복임에 분명하다. 그건 변하지 않는 청사진이다. 함께 궁을 거닐고, 돌담길을 맴도는 삶. 어릴 적 엄마아빠 손을 잡고 가던 서점-나는 많은 문학 작품에서 광화문 교보문고가 등장할 때마다 마음이 쿵쿵 뛴다-과 미술관, 영화관을 배회하는 일상. 지나치게 늠름한 산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하루. 제일 좋은 것들을 늘 거기에 있는 거라고 여길 수 있는 태도. 가장 사랑하는 것을 좇아 이곳에 이르렀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지금의 이 결정이 우리 인생의 어떤 이정표가 될지 사뭇 궁금하다. 아무리 가까워도 수 년이 걸릴 미래를 궁금해하며 고대하는 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에도 지치지 않는 일. 등골이 휘도록 대출금을 갚으면서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 손차양을 하고서 다가올 날을 가늠해 본다. 몇 번의 이사와 잦은 건배, 무수한 시시비비와 아무 때나 터지는 눈물, 겸연쩍은 사과와 익숙한 화해. 앞으로도 되풀이될 것이 눈에 선하다. 그 시간이 흐르고 나면 꼬마는 훌쩍 자라고 우리는 조금 더 나이 먹어있겠지. 집이라는 한 글자에 이렇게 많은 것이 담긴다. 파랑새도 결국 제 집에 있었듯이, 홈 스윗 홈. 희망과 낙관을 건다. 아주 진부하고 상투적인 태도로 꿈과 미래를 그린다. 겹겹의 채무일랑 잊어두고 오늘은 축배를 든다.¡Salud!


이전 19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