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nah May 16. 2024

이상한 이모

참견 말고 관심으로

“끼익! 쾅!”

  학교 앞 신호등 없는 작은 건널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이가 차에 치였다. 다행히 아이는 다리만 부러졌다. 학교 앞에서 속도 30을 지키지 않은 운전자도 잘못이었지만, 핸드폰을 보면서 자전거를 탄 아이의 잘못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핸드폰 게임을 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다른 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와 이를 지켜보던 많은 어른들의 잘못이기도 하다.  


  ‘그게 왜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럼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지난번 저녁을 굶던 아이의 이야기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아이들에겐 큰 잘못이 없다. 아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자기가 아는 방식대로 헤쳐 나갈 뿐이다. 지켜보는 이 없이 다니는 와중에 자전거와 핸드폰은 얼마나 큰 친구가 되어주었겠는가.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주 외롭고, 그 외로움을 잘 다룰 줄 모른다. 2000년대 들어 영유아 우울증 비율이 21프로에 달했다는 결과 보고도 있을 정도다.


  서툰 우리도(우리 어른들도) 우리의 우울을 잘 다루지 못해, 상담도 받고, 불면증 약도 먹는다. 쉼 없이 달리는 동안 멈춰버린 마음의 나이를 어떻게 해야 돌릴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해 괴롭다. 다 큰 우리도 이럴 진대,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핸드폰 게임 중독, 도박 중독, 중독, 중독… 우울과 강박은 어쩔 수 없이 여러 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럼 그때부터 우리는 ‘요즘 애들은…’이라던가, ‘그놈의 게임이 문제지…’와 같은 원망과 혐오의 언어로 응수한다.  


  알지 않은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늘 그래왔듯이,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벗어나는 일이다. 잘못된 루틴을 벗어나, 어려울지라도, 올바르고 힘든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쉬운 길은 아주 자주 바른 길이 아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자전거에서 내려서,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고 좌우를 살폈다면 다치지 않았겠지. 그런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바른 습관은 우리의 관심과 보살핌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 마을이 한 아이를 기른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아이들을, 스치는 얼굴들을 지켜보자. 절대 그들이 혼자 있지 않도록. 혼자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사고도 폭력도 지켜보는 이가 많은 곳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내 자식이라 생각하고 지나치지 말자. 그 아이가 내 아이의 친구이거나, 내 친구의 아이일 수도 있으니.  


  이제는 참견이나 오지랖 말고, 관심과 보살핌으로 다가가자. 다가가는 이도 받는 이도 그렇게 다정하게. 누구 엄마이자, 누구 이모로도 살고 싶다.

나의 엄마, 너의 이모로.

이전 12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