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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May 02. 2024

지고 피기를 게을리하지 않기

내 맘에 꽃을 찾기

  문태준 시인은 꽃집에서 막 사온 장미나 카네이션에서 싱싱한 생기를 느끼고, 우리가 이러한 생기 없이는 살 수 없다 했다. 그래서 그토록 내가 꽃집을 들락거렸던가. 생기가 건강한 사람의 혈액 같다는 말은 혈액 암이었던 내게 얼마나 시의적절한 표현인가. 다 나은 후에도 되찾을 수 없었던 ‘생기’라는 것은 내게 건강을 돌려주지 않았다. 막 피어난 꽃들에서 우리는 생기를 느끼지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우리의 혈액을 돌게 하고 삶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에 그렇다. 매일 꽃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꽃을 마음에 품어야 마땅한 일이다.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것은 공기와 물, 밥과 같은 것 그리고 ‘시’이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 하시겠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다. 다 마음속에 이루지 못한 꿈 하나씩 갖고 있지 않은가? 속 깊이 나누지 못한 슬픈 기억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말하고 싶어 미치겠는 이야기라던가. 그것들이 내겐 모두 시이다. 누군가에겐 노래이고, 이야기이고, 또 책이고, 영화이고, ‘예술’, ‘예술’ 이겠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겐 시로 귀결된다.

  꽃이 피고, 지고, 낙화하고, 개화하는 그 일련의 삶이 내겐 생기를 불어넣는 마중물이고, 그 끝과 시작이 반복되는 끝없는 행진이 나에겐 동력이다. 나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사는가)라고 한다면 하루의 시와 사랑하는 이들이라 하겠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댕은 미술 전문학교를 겨우 나왔을 뿐이었으나, 돌과 조각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그의 작품에 담아냈다. 열정 하면 떠오르는 많은 예술가들 중에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나 또한 시를 열정만으로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를 삶에서 치워버렸던 지난한 날들을 뒤로하고, 다시 삶으로 시를 끌어들인 순간부터 나는 시를 놓은 적 없다. 서점을 하시는 사장님들이 서점 운영을 위해 부업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는데, 나야말로 시를 쓰기 위해서, 시를 쓰면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업을 한다. 무엇이 본업이고 무엇이 부업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나의‘시’를 놓을 생각이 없다. 설사 그것이 내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내 삶의 원동력이고, 나의 꽃이기에. 지고 피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시를 놓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 공부에 매진하고, 삶에 매진한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잠들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빛을 보지 못한 꽃은 끝내 죽기 마련이다. 부끄럽게도 죽었다 다시 사는 삶을 살고 있다. 나의 신체는 죽지 않았지만, 나의 정신은 한 번 죽었었다. 이것은 나의 유리공이 왜 깨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다른 소중한 것을 위해 시를 버렸었지만, 우리는 때때로 (소중하다 믿었지만) 소중하지도 않은 것을 위해 꿈과 같이 소중해마지 않는 것들을 저버린다. 나도 그러했고, 그것은 크나큰 실수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히도 건강이라는 유리공을 깨트리고 나서 꿈도 고무공이었음을 알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 튀어 오른다는 것이. 언제든 내가 손 뻗으면 닿을 곳에서 나를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작고 소중한 것. 누군가에게는 고양이이고, 딸이고, 그림이고, 또 노래인 몽실몽실하고 쓰고 달콤한 것. 존재 자체로 아름다우면서도 다른 이를 살게 하는 것.


  코로나로 오랜 기간 각자의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2023년, 책을 한 권이라도 읽거나 접한 인구가 46프로까지 떨어졌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나는 죽었다 살아났고, 누군가는 자신을 잃거나 또 찾았겠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 이상하고도 이상한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내 안에 ‘꽃’을 혹은 ‘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부터도 또 한 번의 팬데믹을 맞는 다면 살아남을 자신이 없기에. 책을 읽고, 나를 찾는 과정이 더는 취미가 아닌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된 것이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자, 하다 못해 나의 최근 3년을 돌아보자. 나는 무엇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불행을 택했는지. 무엇을 택하고, 미소 짓고 싶은지. 행복은 정말 가차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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